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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월 Sep 17. 2023

8일차

1부

8일차 1부


7월28일(금)


오늘은 진짜 휴가다운 느낌으로 한국에 있는 동생과 수영장 옆 선베드에 누워 1시간 동안 통화를 했다. 동생이 이렇게 통화 거면 왜 외국에 갔냐며 타박했지만 수영장 옆 선베드는 또 다른 느낌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썩, 동조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인정한단다.  통화를 마치고 나는 수영복을 입고 와서 본격적으로 수영을 하였다. 수영장엔 아침 일찍부터 필리핀 남매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심심하기도 해서 아이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며 이야기를 좀 나눴다. 낯을 가리는 내 성격상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고, 실상 내가 한국에서 그랬다면 사람들은 분명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은 모르는 사람과도 가볍게 Hello를 주고받는 정서라 부담 없었고 특히 필리핀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호의적이라 말을 걸면 잘 대답해 준다.


그래서 이곳에 있으면서 자주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외국인에게, 마트에서 계산하시는 cashier에게 식당에서 주문받는 waiter에게, 가끔 길게 줄을 서는 일이 있으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언제 이곳에 왔냐? 등등의 질문을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대화를 할 기회가 1도 없었기 때문이다.(무심한 십대 아들과는 서로 해야 할 말이 없기에....)


아이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며 이 아이들의 부모는 필리핀에서 엄청 부자겠구나 싶었다. 필리핀의 일반적인 월급은 300,000원 정도 인데, 내가 묵고 있는 이 숙소의 일주일 숙박료가 약 300,000원 정도이다. 한국으로 치면 내 한 달 치 월급이 일주일 숙박료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게 여기 한가로이 수영을 하며 나와 대화하는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이 아이들은 어쩌면 유명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아이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항상 '을'이라 느껴졌던 내가 어쩌면 이곳에서 나름 부잣집 행세를 할 수 있을거라는 기시감이 생겼다.('갑'=부잣집 사람 이라는 등식이 항상 적용되는건 아니지만 그 개념이 항상 내 밑바닥에 깔려있다.) 그리고 가끔은 나도 누군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대우를 해준다는 게 썩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도 하고 선베드에 누워 책도 읽고 빈둥 빈둥거리니 진짜 휴가라는 느낌이 들었다.(생각해 보니 이 표현도 많이 쓴 것 같다.) 정신없이 여유를 부리다 점심 약속에 늦을 것 같아 헐레벌떡 숙소로 돌아와 서둘러 샤워를 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오늘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사업을 하고 계시는 교회 장로님을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시부모님과는 친분이 두텁고 남편과는 가끔 당구를 같이 치 막역한 사이지만 나와는 교회에서 인사만 나누는 영 어색한 어르신이다. 어떻게 아셨는지 출국일 인천공항에서 갑자기 '필리핀에 오면 한 번 자꾸나' 라는 메시지를 받았었다.(시부모님이 알려드렸단다) 그런 연유로 어색한 만남이 성사되었다. 베니스 몰 3층 헬스장에 있는 대니를 불러 1층 로비에서 교회 장로님을 함께 만났다. 분명 한국에 있다면 이만큼 애틋하고 반갑지 않았을 터인데 외국이라 그런지 안면만 아는 한국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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