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다는 것

2012 까미노

by Cielo

2012. 7. 29 (일)

여기는 에스떼야. 어느새 5일 차 까미노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기도 하지만 한참 남았다는 생각도 든다. 나중엔 비로소 혼자가 되겠지.

그때의 나는 어떨까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인 걸까

적당히 외롭고 고독하고 내가 생각했던 다양한 까미노의 모습이 보인다.


인생의 많은 것들은 항상 내 상상 밖이었지. 그래서 더 재밌었을지도 모른다.

걷는데 이젠 점점 더 무릎이 아파온다.


하루종일 걷다 보니 오늘이 일요일인지도 몰랐다. 당최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없는 진정한 순례자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토대장정을 했을 때 모자와 조끼에 사람들의 손글씨를 받았던 적이 있어 난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모자에 한마디 써달라고 부탁했다.


한 스페인 남자에게 다가가 모자에 "한마디만 아무거나 써줄래?"라고 부탁했더니 심각하게 10분이나 고민하며 겨우 쓴 내용이 고작 'Buen Camino (좋은 순례길 되길)'이라는 문구였다. 신중한 친구 같았다. 순례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다는 건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다.


2012. 7. 30 (월)


오늘은 Los Arcos라는 동네에 왔고 6일째 걷고 있다. 아침부터 이라체라는 와인이 유명한 마을을 지나갔는데 가기 전부터 와인 시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잔뜩 기대했었다. 설레는 마음을 앉고 마을에 도착해서 와인시음분수대를 발견했지만 아침 7시라 와인을 마실 수 없었다.... 8시부터 연다고 하는데 아쉽기 그지없었다. 잘 나오지도 않는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돌려서 찔끔찔끔 마셔보긴 했지만 성에 차진 않았다. 와인에 취하며 걷는 순례길을 상상했는데 나의 판타지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발길을 겨우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이제 점점 햇빛은 뜨겁고 그늘도 없는 길들 만 있었다. 도대체 그 유명한 메세타 고원은 얼마나 더 힘든 걸까. 내일은 목적지인 로그로뇨까지는 거의 29km인데 내가 잘할 수 있긴 할까.. 저녁식사는 까르보나라와 고기 통조림으로 해결했고 어눌한 나의 요리실력이 탄로 났다.


그때 알베르게로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자 2명이 들어왔다.

말하지 않아도 한국인 같아 보였다. 타지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왜 이리 반가운 건지..!

그렇게 우린 어느새 5명의 크루가 되어있었다.


2012. 7. 31 (화)


새로 만나게 된 두 명은 아주 예전부터 절친이었고 그렇게 둘이서 스페인 순례길을 오게 됐다고 한다. 너무 멋진 우정 같아 보였다. 3명이었던 우리는 5명이 되었고 각자 왜 까미노에 오게 되었는지 우리의 삶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걷는 길은 여전히 뜨겁고 힘들지만 저녁도 같이 해 먹고 하루의 끝엔 다 같이 맥주도 마시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행복해지는 하루였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걸었다. 이 노래를 기억하고 싶다.


포이트리 (Feat. 옥상 달빛) - 흐린 뒤 맑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포기하려 할 때 그때가 시작이야.
삶은 늘 그래 우산 하나 없이 만난 소나기처럼 다 젓게 하지만 난 또 바보처럼 무지개가 예뻐서 눈물을 그쳐.

이루지 못해도 좋아 언제까지나 미뤄도 좋아
숨차게 달려왔으니 이제는 잠시 쉬어도 좋아 떠나가도 돼 어디로 든 너는
발목 시릴 만큼 걸어가다 보면 실컷 울어도 돼. 눈물 어린 얼굴 때리며 나 힘을 내봐.
그럴 거잖아 흐린 뒤에는 다시 맑은 날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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