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민함이 너의 배려로 바뀔때

2023 올레

by Cielo

2023. 7. 23 (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루하루가 아깝다. 게스트하우스 조식을 든든히 먹고 출발했다. 진짜 밥심은 중요하다고 시리얼도 먹고 커피도 먹으니 힘이 나는듯했다. 김녕 쪽의 바다는 너무나도 시원했다. 확실히 바람이 많이 부는 탓인지 거대한 풍력발전소도 왠지 멋져 보였고 서퍼들도 가득했다. 올레길도 그에 얼맞게 우리를 바다로 이끌고 있었다. 모자를 벗어 바닷바람을 느낄 정도로 너무 상쾌했으나 모든 길은 화산돌로 가득해서 자칫하면 위험하긴 했다. 짝꿍은 계속해서 한 발을 벗어서 땅에 도착할 때까지 나머지 발은 돌에 디디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하기 일쑤였고 발목이 좋지 않은 나는 머릿속에 계속 되새기고 있었다.


여기서 다치면 X 된다.


아직 3일밖에 걷지 않았는데 여기서 다칠 순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있던 낚시꾼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올레길의 상징인 리본을 놓쳤고 갑자기 우린 길 잃은 신세가 되었다. 나중엔 이게 길인가 싶을 정도로 애매한 길이 있었는데 너무 풀숲이어서 이럴 리 없다 의심하던 찰나에 짝꿍은 벌레에 두방이나 물렸다. 나중에 다시 보니 너무나도 멀쩡한 길을 놔두고 사서 고생한 걸 보고 잠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이미 걸어온 건데 어쩔 수도 없다.


아침부터 배가 고프던 찰나 월정리해변에 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먹고 가자고 협의 봤다. 우연히 브런치 카페를 찾아 잔뜩 먹었지만 그래도 우린 허기진 올레꾼 2명이었다. 어차피 월정리에서 점심을 해결하지 않으면 오후코스에는 걷는 길만 나왔다는 걸 알았던 우리는 오전타임에 브런치를 클리어하고 내내 걷기 시작했다. 숲길도 갔다가 돌길도 만났다가 그래도 오늘은 어제보다 거리가 짧다는 위로를 하며 중간에 카페도 들려서 에어컨 바람도 쐬고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 순조롭게 흘러갔던 걸까... 목적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발을 한번 삐끗했고 바로 괜찮아졌지만 나중에는 제대로 오른발을 접질려 시큰하게 아려왔다. 안 그래도 인대가 파열된 적이 있어서 더 자주 접질리는데 거의 도착지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망이 나를 안일하게 만들었다. 그 수많은 화산돌을 한발 한발 신중히 건너던 내가 아주 쉬운 길에서 삐끗하니 나 스스로도 너무 속상하고 주저 않아 내가 이걸 과연 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하기까지 이르렀다. 최고로 예민해진 나는 괜히 별것도 아닌 대화에도 짝꿍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몸이 피곤하고 다치는 상황이 오니 가장 소중한 파트너에게 불똥이 튀는것같았다.


다친 건 나이고 걷는 건 나인데 왜 내 화가 이 친구한테까지 전달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스스로가 어리숙하고 바보 같이 느껴져도 또 이런 순간이 오면 왜 난 똑같은 실수를 하는걸까.


바로 나의 예민함에 반응한 짝꿍은 대신 약국도 찾아줘서 결국 염좌스프레이와 발목보호대를 구입했다. 20일 동안 걸을 건데 벌써 3일째에 부상을 당한 게 여간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금 휴식을 취하고 나니 금세 나아졌다. 나와 걸어주는 고마운 내 파트너에게 심술부린 게 많이 미안해졌다.


그래도 부상을 극복하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올레센터에 도착해서 양말도 두 개 샀다. 사실 양말을 살 생각은 없었는데 비 오는 날에는 양말도 구멍 나고 이미 다 젖어서 숙소에서 버린 터라 급하게 사야 했다. 두 양말 중의 하나는 올레길의 표지판 간세싸인이 있고 나머지 하는 화살표 표식이 있어서 독일가서도 이 양말을 통해 올레를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숙소에 도착한 후 저녁을 먹고 나서는 우린 평대리 바다 앞에서 맥주도 마셨다. 조용히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해변을 보며 왜인지 벌써 돌아가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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