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마. 우린 언제든 돌아갈수 있어

2023 올레

by Cielo

2023. 7. 22 (토)


험난한 둘째 날의 올레였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건 알고 있었다. 아주 야물차게 우비도 입고 배낭 커버도 씌우고 단단히 준비하고 나갔다. 아침부터 시원한 비를 맞으니 오히려 시원하고 좋다고 생각했다. 스탬프를 찍으러 시작점에 갔는데 올레 센터분께서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비가 올 때는 센터 안에서 스탬프를 찍어주신다. 다만, 나가는 길에 메아리 처럼 하신 말이 있다.


"비가 오니 물웅덩이를 조심하세요."

이 말이 하루를 점령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물덩이를 발견했고 둘 다 러닝화정도의 신발만 챙겨 온 터라 제대로 된 방수기능이 안돼서 최대한 물 젓는 건 피해야 했다. 근데 정말이지 그 뒤로 한 20개의 물 웅덩이를 만난 것 같았다. 아침부터 갔던 코스는 서서히 바닷길 쪽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너무나도 무지막지한 물웅덩이를 만나버렸다.


정말 바로 전까지는 바닷길이 너무 예뻐서 동영상도 찍고 있던 내가 너무 한심해질 정도였다. 물 웅덩이를 만나면 보통 옆으로 살짝 뛰어가거나 할 수 있었는데 도저히 그 웅덩이의 스케일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풀숲 안의 크게 고여있는 물을 보고 짝꿍은 도전해 보겠다며 크게 한 발을 디뎠지만 결국 다 젖고 말았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우리는 코스를 우회해야 했고 아쉽게도 바닷길을 포기했지만 큰 차도로 조금 걸어가다 금세 19코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함덕해변에 진입할 때쯤엔 점점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작년 12월에 왔던 곳이라 그래도 익숙해졌고 한껏 젖은 신발 때문에 어디 양말 파는 데는 없나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함덕해변 쪽에 먹을 장소가 많다는 건 알지만 우리에겐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 카카오맵을 보니 오후일정상으로는 가는 길에 거의 식당도 없고 화장실 카페는 더더욱 없을 예정이기에 우린 북촌포구에서 점심을 해결하자고 전날부터 결정해 둔 상태였다.


북촌포구에 도착해서 한 라멘집을 찾았는데 오히려 돈가스덮밥이 맛있어 보여 시켜보았다. 샐러드부터 밥 양도 너무 많아서 아주 든든하게 해결했는데 주인장 할머니 분께서 우리 둘을 보며 너무 신기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왠지 모르게 앞으로도 우린 많은 질문과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런 대화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든든히 채우고 나서는 역시나 숲 속트래킹을 시작했는데 비는 그쳤지만 울고 싶을 정도로 물 웅덩이가 많았다. 문제는 도로면 옆길로 가면 되는데 산속에서는 나뭇가지에 찔려가며 길도 아닌 곳으로 우회하여 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인디아나존스 느낌이랄까. 닌텐도 젤다게임의 마스터인 짝꿍은 아무리 힘든 웅덩이도 요리조리 피하고 가장 안전한 돌을 미리 발 디뎌보며 현명하게 챌린지를 이어 나갔고 어리숙한 나는 오른쪽 발을 거의 포기하여 젖은 채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짝꿍은 정말 자신이 완수한 챌린지를 사진을 찍어가며 기뻐했다. 생각보다 올레길이 스페인보다 더 자연적이고 다이내믹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물웅덩이를 잘 패스해 가며 우리는 완주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었다. 내가 길을 잃어도, 큰 웅덩이를 마주쳐도 돌아간 길에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되는 거다.


선우정아 도망가자라는 노래 중 아래의 가사가 있다.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짐을 가볍게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제목은 도망가자이지만 다시 결국 돌아가자라고 말하는 이 노래는 오늘 나의 하루에 어울려 보였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는 주인장분의 프로페셔널함에 깜짝 놀랐다. 물집을 치료할 수 있는 대일밴드부터 신발을 말리는 드라이어까지 진정한 올레꾼의 기질이 게스트하우스에 녹아져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샤워를 하고 우린 지금 고양이 3마리가 있는 카페에 와있다. 그리고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조금 있다가 저녁으로는 흑돼지와 소맥을 먹을 거다.


오늘 하루, 너무 좋다.

이전 06화혼자 말고 셋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