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elo Oct 04. 2023

우린 어떤 관계일까

2012 까미노

2012.8.12 (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바로 걷기 시작하니 여전히 힘들었다. 한참 걷다가 고민 끝에 짝꿍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로 그럴 줄은 몰랐다. 물론 나 때문이 아닐 거라는 건 알고 있다. 운이 좋았던 것일 뿐이다. 프랑스 교환학생을 곧 시작하는 이 친구는 프랑스에서 살 기숙사가 구해졌기에 더 일찍 순례길을 마치지 않아도 되었고 그래서 항공권을 바꿀 수 있고 30일까지 여기에 나와 있을 수 있고 그리고 피니에스테라까지 갈 수 있다는 거. 그래. 이 아이의 계획일 거라는 거 이해한다. 그렇지만 조금은 당황스럽고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온갖 복잡한 감정이 뒤섞이고 있었다.


나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싶기도 했다. 솔직히 이유가 나였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동시에 왜 굳이 나 때문에 까미노의 일정을 바꿔야 하는 걸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공존했다. 나의 짧은 영어로는 전달되지 못했을 것 같다. 진심은 알았을까? 이 친구는 스페인 사람이라 나에게 참 많은 도움을 주었는 데에 반해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냥 걷고 생존할 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날 위해 희생해 주고 날 좋아해 주는 이 친구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청승맞게 울었다. 미안해하지 말라는 이 아이의 말로도 난 스스로 복잡한 감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오늘도 순례길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인 레레가 지나가는 말로  ' Boyfriend '라는 단어를 썼을 때 잠시 놀랐다. 우리가 정말 연인일까. 우리는 어떻게 돼 가는 걸까. 둘 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한 번도 말을 꺼낸 적이 사실 없다.  이 아이가 너무 익숙해지는 게 두려운데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오후 내내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짝꿍이 전화를 받았다. 곧 까미노의 일정에 합류할 친구들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이 친구가 전화로 소개해줬는데 많이 놀랐다. 당당하게 나를 소개해주는 모습에 정말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보게 되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잘 보여야 될 것 같고. 둘이 있는 것도 좋지만 다 같이 있는 함께하는 재미도 결국 까미노의 매력이다. 한국요리를 친구들에게 해주기로 했는데 과연 어떤 요리를 내가 스페인에서 할 수 있는 걸까.



이전 02화 제주도 셀럽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