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올레
2023.7.31 (월)
올레스테이에서 물린 모기 때문에 몇 번이나 잠을 설친 탓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진짜 이놈의 모기는 박멸하고 싶다. 요즘 모기는 심지어 소리도 전혀 나지 않아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짝꿍말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 종들이 진화해서 살아남는 것 아니냐는 가설을 내놓기까지 했다. 무튼 모기 덕분에 일찍 일어나 짐도 채기고 평소보다 더 일찍 길을 나섰다. 바로 앞 편의점에서 커피랑 빵을 먹고 출발했는데 아찔하게도 앉자마자 비가 와서 아차차 싶었지만 그 이후로 빗방울 하나도 맞은 적이 없다.
그래도 아침에 걷는 게 좋은 건 좀 더 신선한 공기와 적은 습도의 온도로 걸을 수 있다는 게 아주 큰 장점이고 정말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다. 지금까지 올레길을 걸으면서 느낀 건 제주도의 남해안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다. 동쪽 제주도와의 아름다움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랄까. 너무 거대하고 위풍당당한 풍경은 그냥 당연히 카메라부터 들이밀게 만드는 풍경이다. 사진을 잘 찍지 않는 짝꿍도 나보다 더 사진을 자주 찍는 걸 보면 정말 걸을만한 풍경인 것 맞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생각보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고 왠지 모를 유대감도 다시 한번 생긴다. 그리고 남쪽을 비교해 보면 정말이지 좋은 집들과 리조트 호텔도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날씨가 더 좋기도 해서 그런가 돈이 없는 우리는 다시 한번 제주도로 와서 호화로운 여행을 언젠간 해보자고 모든 리조트를 지나갈 때마다 한 마디씩 덧붙였다. 내가 보기엔 막상 돈이 있다 해도 그런 곳에 다신 안 갈 것 같긴 하지만 그냥 상상회로만 돌려도 그게 참 좋다.
가는 길에 어떤 식당이자 포차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 있었는데 계곡물 위에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먹는데 진짜 시원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신기한 나머지 사진도 여러 번 찍고 좀만 더 가니 제주도의 최남단 동네도 도착했다. 짝꿍은 남한의 최남단에 왔다며 좋아했고 그 이후로도 끝도 없는 바닷가 자갈길이 나왔다. 바다를 보는 건 좋지만 바다 옆 돌길을 걸을 때면 다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나가게 된다. 왜 쓸데없이 무게중심 때문에 크게 다치는 상상도 하고 그때만큼은 이미 헬리콥터가 내 머리 위로 도착해서 크게 다친 나를 이송해 갈 것만 같은 이상한 상상도 다한다. 이렇게 온갖 상상을 해보지만 하루하루 올레길을 걸으며 느끼는 건 생각보다 사람은 쉽게 안 죽고 쉽게 다치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내 상상력이 그것 보다 더 무서웠다.
바닷길에서는 실제로 물질을 하시는 해녀도 볼 수 있었다. 그룹이 나눠져 있는지 왼쪽 오른쪽에 적어도 10분씩 물질하시는 걸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다 끝나고 나오시는 분들도 볼 수 있었다. 나이가 정말 지긋하신데도 계속 일하시는 모습을 보며 너무 존경스럽고 경외로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세계에 나 스스로 다시 겸손해짐을 느꼈다.
조금 더 가서는 이제 점심을 무조건 먹어야 하는 시간이 되어 짝꿍이 돈가스 집을 찾았는데 웨이팅까지 해야 해서 다른 데로 가고도 싶었지만 쉬는 겸 기다려보기로 했다. 가게 이름은 날짜로 되어있어서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생일이 똑같은 부부가 운영을 하고 있는 곳이었고 아주 알찬 돈가스를 먹어서 기다림이 아깝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이렇게 곳곳의 맛집을 먹는 게 은근 올레길의 재미이자 오늘 하루 뭘 먹지 고민하는 매일의 숙제이기도 하다.
끝자락에 다 와갈 때쯤에는 너무 예쁜 하늘이 있어서 연신 사진을 찍어가며 눈에 담아두었다. 이 새파란 하늘과 바다를 내가 언제 볼 수 있을까. 가끔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것들이 있다.
내 마음속의 제주도도 예쁘게 기억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