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올레
2023. 7. 30 (일)
진짜 오늘은 꿈도 뒤숭숭하고 기분이 이상한 채로 일어났다. 몸이 진짜 너무 힘들고 어제 밤새 얼음찜질을 했음에도 발등은 낫질 않았다. 그냥 쉬어야 낫는 게 아닐까 싶고 정말 아주 잠깐 아주 살짝 내 컨디션이 계속 이렇다면 포기해야 되는 건 아닐까 잠시 1초간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 생각은 버리자라고 생각하고 조식을 먹으러 갔는데 쌀국수가 한국식으로 나와 아주 맛있었다. 아침부터 국수를 든든히 먹어서 인지 그래도 좀 힘은 나는 것 같았다.
날씨가 아주 청명했는데 생각보다 습기가 덜해서 시작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거의 10일 만에 제대로 보는 제주도의 하늘이라니.. 너무 예쁜 나머지 몸의 피로가 가시는 것 같았다. 너무 아름다운 것 하나가 나머지를 모두 잊게 하다니 신기한 일이다.
우리의 시작은 쇠소깍이다. 예전부터 추천받았던 곳이라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되어 올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카누도 타고 보트도 타고 너무 여유로워 보여서 살짝 부럽기도 했다. 내가 놀러만 왔다면 보트도 타고 놀았겠다 싶기도 했다. 쇠소깍을 지나서는 바닷풍경이 끝내주게 좋았다. 한발 한발 걷기 아까울 정도로 정말 멋진 풍경이 보였고 사람들이 왜 이 6 코스를 좋아하는지 조금 이해가 됐다. 11km가 짧은 듯 하지만 사실 은근히 알찬 코스이다. 멋진 폭포와 절벽도 보이지만 작은 개울가를 건너야 하는 아찔한 구간도 있긴 하다. 특히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작은 개울가도 물이 넘쳐흘렀고 돌을 하나씩 디디며 지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나기도 했다. 이런 길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도대체 어찌하시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검은여해변 쪽에는 호텔도 주변에 있었는데 그중 한 분께서 폭포는 꼭 보고 가라며 우리를 친히 이끌어주시기도 했다. 뭔가 웃긴 게 멋진 풍경들은 꼭 보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신가 보다. 제주 사람들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너나 나나 한 마음으로 구경거리를 일러주시는 게 새삼 귀엽게 느껴졌다. 서귀포시내에 와서는 다시금 도시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아주 가파른 길에 있는 이중섭 거리를 걷다 보면 이중섭생가도 있었고 가는 길엔 제주 올레시장도 있어서 우선 숙소체크인부터 먼저 하고 시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올레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어떤 분께서 허겁지겁 달려나오셔서 말을 걸어오셨다. 나름 제주도안에서 우린 소문이 자자했던 모양이었다. 매번 올레센터에서 만나던 분들이 우리의 만남과 신혼여행스토리를 들으셨고 제주도를 걷고 있는 동안 우리의 행방이 실시간으로 단체톡방에 공유된 것 같았다. 코스마다 우리를 봤다는 목격담이 공유 되고 있었던것이다. 때마침 일요일이라 올레센터에서 일하고 계시던 자원봉사자분께서는 우리를 만나면 꼭 붙잡으놓으라는 홍보팀의 미션을 부여받으신 것이었고 우리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셨지만 부끄럽기도 하고 일정상 계속 걸어야 하는 상황이기에 당시엔 거절하긴 했다. (나중에 서면 인터뷰로 대체했다)
우리의 이야기가 그분들에게 너무 흥미로웠다니 신기하고 괜시리 작은섬의 셀럽이 된것같았다.
https://blog.naver.com/jejuolletrail/223207541381
올레센터에 계신 분은 아주 인싸셔서 100km 완주증서도 아주 큰소리로 외치고 매달도 걸어주셨어서 어디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뭔가 100km 완주증과 산티아고 공동 완주증까지 받으니 은근 뿌듯하긴 했다. 너무 예전에 걸은 산티아고 길이라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난 도대체 900km를 걸은 건지 어릴 때 난 제대로 미쳤었구나 싶은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이번의 제주올레길은 추자도,가파도,우도를 못가게되어 437km 완주증은 받지 못했으나 나중에 다시 와서 완주증을 받아갈 생각이다.
짝꿍과 나는 처음으로 도미토리에서 그것도 각방에서 자게 되는데 뭔가 아쉽긴 해도 10년 전 산티아고 시절이 생각나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10번 방 9번 방 바로 옆방인 데다가 하필 고른 침대도 방향이 비슷해 충전기를 빼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벽하나 사이로 따로 자니 더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고 우리 둘 다 우연찮게 2층 침대를 놔두고 1층 침대에서 자는 걸 보니 나이가 들었구나 싶기도 했다. 그래 다리가 아픈 우리에게 2층 침대는 로망이 아니라 사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서귀포올레시장에 들러 내일 아침으로 먹을 빵도 사고 오랜만에 도시다운 도시에 와서 술도 먹기로 했다. 이렇게 올레길에서 맨날 술만 먹고 맛있는 것도 먹고 배만 더 나오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