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까미노
2012. 8. 22 (수)
산티아고를 도착하기 하루전날이다. 내가 정말 여기를 오게 될 줄이야. 아침에는 어깨가 너무 아파 미칠 것 같았다. 걷는 것보다는 이제 가방의 무게를 견뎌내는 어깨에 한계가 오는 것 같았다. 보통 아침을 바에서 해결하니 그전까지는 쉬지 않고 걷는 편인데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쉬기도 했다. 저 멀리서 보이는 바의 불빛하나가 이렇게 날 행복하게 할 줄이야. 후반부로 접어드는 순례길이라 사람도 많아져서 공립알베르게는 거의 갈 수가 없었고 다행히 이탈리아친구의 도움으로 사립알베르게를 미리 예약해 줘서 걷는 내내 마음 편히 갈 수 있었다.
마지막 날이어서였는지 까불대던 이탈리아, 스페인친구들은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점심에 다 같이 샌드위치를 먹는데 모두 아무 말도 없이 장난도 안치고 먹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지칠 대로 치져있었던것이다. 한없이 착한 나의 짝꿍도 오늘 처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며 이 친구도 피곤했구나 싶었다. 이젠 이 친구가 피곤할 때 내가 힘이 돼주고 싶다.
저녁엔 마지막 만찬으로 다 같이 바에 가서 술을 마셨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유명한 Orujo라는 샷을 시도해 보았는데 친구들이 자꾸 센 술이 아니라고 꼭 먹어보라고 꼬드겨서 마셨지만 마셔보니 목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친구들이 알보고니 단체로 날 속인 것이었다! 이 장난 투성이인 친구들과도 내일이면 끝이다.
오늘 걸어가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뭘까. 여러 가지가 떠올랐다.
나중에 이 까미노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기억 중에 하나가 되겠지.
나는 지난 30일 동안 무엇을 느꼈을까. 적어도 내가 여기 온 것에 너무 감사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너무너무 특별했지. 잊지 못한 순간들을 선사해 준 모든 사람들과 너무 아름답던 풍경들. 매일매일 걷는 거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곳을 다녀왔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어떨까.
나의 여름은 왜 이리도 지독히 아름답고 특별했을까.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른다. 너무나 절실히 이번에 깨달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아무리 계획하더라도 세상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더라. 가끔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지만 결국엔 끝이 보이고 마을이 보였다.
까미노처럼 내 인생에도 화살표 표시가 있었으면 했다. 나의 삶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표지판하나 없이 걷는 했으니까. 우울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방황하는 청춘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안다. 내 마음속에 화살표가 있다는 걸. 나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이 세상의 끝에 도달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