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올레
2023. 8. 5 (토)
어제 술도 마시고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터라 몸이 아주 무거웠다. 그래도 별수 있나 다시 발목보호대를 차고 갈 수밖에..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가 죽부터 토스트까지 한상으로 차려주셨다. 모든 올레꾼이 거의 여기서 숙박하는 것 같던데 동네에 이 게스트 하우스가 유일해서도 있겠지만 그걸 떠나 올레꾼들이 쉬기에 너무 좋은 장소와 아주머니의 따스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찍 주신 조식 덕분에 길을 조금 더 일찍 나섰는데 어제저녁 친구차를 얻어다 술 마시러 나갔던 그 도로를 다음날 이렇게 걷고 있다는 게 잠시 웃겼다.
올레길은 점점 더 우릴 해변 쪽으로 이끄는듯했다. 문제는 바다와 무릉사이는 너무 광활하고 오로지 밭만 보인다는 것. 계속 같은 모습의 풍경이라 지루 할 때쯤 녹남봉에 도착한다. 아주 작은 동네뒷산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초반의 계단길은 힘들었는데 이쯤이야 뭐 한큐에 끝냈다. 올레길의 후반부로 갈수록 좋은 점은 어떤 길을 만나도 자신감이 붙고 속도도 빨라진다는 점. 발에 부스터를 단 느낌이다.
다만 이런 작은 봉들을 만나면 모기소굴로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아무리 모기 기피제를 들어가기 전부터 뿌린다고 해도 거의 우리의 몸을 바치러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걷는 내내 조금이라 덜 물리기를 기도하며 지나갈 뿐이다. 실제로 5마리의 모기가 물 마시는 사이에 몸에 달라보는걸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왜 우린 이 한여름에 걷는 걸까.
12코스의 힘든 점은 초반에는 카페도 없고 편의점도 없다는 것이다. 걷는 건 이제 상관없지만 쉴 곳이 없다는 걸 우릴 정말 힘들게 한다. 특히 일주일 연속으로 31도에 웃도는 날씨라 수분섭취가 필요한 상황에서 나는 머리도 점점 아파올 지경이었다. 다행인 건 계속 걷다 보니 드디어 해안가에 도착했는데 제주도에서 바다를 거의 맨날 보던 내가 하루 못 봤다고 이렇게 반가워질 줄은 몰랐다. 바다를 보면 적어도 바람이 불고 곳곳에 쉴 수 있는 벤치나 정자 그리고 공공화장실도 있기 때문에 쉴틈이 생긴다.
또 한참을 걸어 올라오다 보면 수월봉을 지나게 되는데 맵을 보니 몇 년 전 잠시 들렸던 카페가 그 자리에 있었다. 바로 엉알해변을 가기 전이라 어제 만났던 친구에게 이 카페 기억나냐고 사진을 하나 보내놓고 커피 한잔도 시켰다. 잠깐 쉰 후에 엉알해변을 걸었는데 예전엔 해가 지는 일몰 때 걸었다가 새파랗게 파란 하늘을 보니 그것 또한 다른 매력이었다. 같은 장소를 해가 지나 다시 오니 이렇게 좋을 줄이야. 차귀도포구에 도착하고 나서 조금만 더 가면 당산봉이 나오는데 아주 다행히 당산봉을 오르는 코스는 아니지만 해안절벽 둘레길을 지나가 풍광이 너무 아름답다. 특히 고개를 왼쪽으로 돌면 보이는 차귀도가 너무 예뻐서 굉장한 사진 스폿이다. 역시 제주도는 바다 보는 맛인 것 같다.
쭉 나오다 보면 용수리 포구에서 스탬프를 찍었는데 찍자마자 비가 후드득 오기 시작했다. 점심도 먹을 겸 빨리 카페로 대피해야 했고 짝꿍이 먼저 들어가는 사이 앞에서 꺅 소리가 들렸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어제저녁에 만났던 친구가 카페에서 나오고 있다가 마주친 것이었다. 둘 다 정한 것도 아니고 서로의 일정을 누리는 날임에도 불고 하고 우연히 카페에서 마주친다는 게 신기한 우연이었다. 카페에 들어오니 심지어 비도 더 많이 오기시작해서 최고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베이글도 너무 맛있다.. 안 그래도 한국에서 베이글을 꼭 먹고 싶었는데 친구랑 취향이 비슷해 너무 신기하다. 남은 하루도 또 우연히 마주치진 않을까 혹은 내일 돌아갈 때 또 마주쳤으면..!! 올레코스에서 만나는 절친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