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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o Oct 10. 2023

나의 뜨거운 여름. 산티아고

2012 까미노

2012. 8. 23 (목)


산티아고를 향하던 마지막 아침. 믿기지가 않고 기분이 이상했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빨리 가야겠다는 부담보다는 계속 걷는 것 자체가 아까울 정도다. 매번 시끄럽고 조잘대는 이탈리아 친구 레레도 그날만큼은 감성이 폭발했는지 말 한마디도 안 하고 혼자 노래를 들으면서 걷고 있었다. 아침부터 걷기 시작해 도착했던 바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역시 마지막 구간인지 사람이 바글바글 거리는 건 처음 봤다. 우리 멤버들은 마지막날까지도 여전히 농담이나 장난을 치며 걸었다. 마지막으로 걷는 길이라서 그랬나 길도 너무 쉽고 정말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 같아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었다. 그 순간만큼은 지나온 시간들, 모든 것들을 떠올리고 싶었다. 



그렇게 걸어가다 산티아고 초입부에 들어섰을 때는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정말 산티아고인가. 도시가 꽤 커서 멀리서도 성당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턴 약간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기분도 오묘해지고 내가 정말 왔구나 싶었다. 그것도 혼자서가 아닌 이 친구와 함께 왔구나. 너무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덮쳐와서 일부로 노래를 미친 듯이 부르기 시작했다. 거의 뮤직박스 수준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한국노래들과 즐겨 들었던 팝송까지 사람이 있건 없건 듣건 말건 미친 애처럼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같이 걷던 친구들도 감수성이 폭발했는지 얼굴 표정만 봐도 정신이 나가 있는 건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산티아고 성당의 입구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고 수많은 기념품가게가 널브러져 있었다. 괜한 모습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성당의 탑이 보였다. 수많은 인파가 성당 앞에 있었고 내 눈앞에 있는 존재를 여전히 믿지 못했다. 내가 드디어 이걸 보는구나 이것 때문에 왔구나. 처음엔 얼떨떨해서 오히려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다만 울지 않으려 조금 노력했다. 





그 순간 나와 같이 함께 온 내 짝꿍과 성당 앞에서 진한 입맞춤을 했다. 그 순간 이 아이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과 고맙고 미안했던 모든 감정이 뒤섞여 펑펑 울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주위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환호를 지르며 축하해 주었다. 같이 걸어보자는 말 한마디에 우린 여기까지 와서 결국 성당을 보고야 말았다. 성당 앞은 소리 지르며 환호하기도 하고 펑펑 우는 사람도 있고 도착하자마자 땅바닥에 누워 쉬는 사람도 있다. 모두 각자의 산티아고를 흠뻑 즐기고 있었다.


한 아일랜드 방송국에서 순례자들에게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는데 나도 어쩌다 영어로 인터뷰를 했다. 아직도 내가 왜 거절도 안 하고 얼레벌레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글거리는 답변이었는데 스페인친구들이 나를 따라 하며 놀렸다. 그때만큼은 우리 모두가 기분이 최고 져였던 게 맞다.  도착한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고는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었다. 참 고생도 많았고 정도 많이 들은 친구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산티아고 기념품도 사진으로 남겼다. 까미노를 하면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받아온 메시지였다. 매일 쓰고 다니는 모자에 총 9개 국어의 언어가 쓰여있다.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을 추억하고 싶어서 적게 되었는데 꽉 채우고 나니 너무나도 뿌듯했다. 




그렇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게 되었다. 그것도 잊지 못할 나의 연인과 함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산티아고 성당에서 마무리를 하지만 우린 바다를 보고 싶었다. 

또다시 세상의 끝으로 가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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