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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o Oct 08. 2023

사랑하기로 한 다짐

2023 올레 

2023. 8.4 (금)


오늘은 우리의 11주년이었다. 11주년이었지만 어제 내가 화가 잔뜩 난덧 탓에 아침부터 살짝 뾰로통했으나 어쩌겠나. 내가 선택한 삶과 결혼인데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피치 못할 투닥거림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중 퀸샬롯에도 ' 결혼은 결심'이라는 말이 있었다.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다짐. 좋으나 싫으나 내 곁에 네가 있을 거란 걸 알기에 11년 전 오늘도 걸었고 그리고 11년 후도 너와 걷지 않았을까.


우리의 아침 식사는 호텔 앞 편의점이었다. 주무시고 계시던 사장님을 깨워서 아침을 해결하고는 길을 나섰다. 우리는 정말 아침식사가 필요했기에 깨웠지만 다른 손님은 차마 사장님을 깨우지 못해 돌아가신 것도 봤다. 무튼 오늘 지도를 보면 건물도 없는 쌩 제주도 내륙의 코스였다. 앞이 좀 착잡했다. 보통 쉴 수 있는 편의점도 있고 할 텐데 아예 건물자체가 지도상에 보이지 않는 형상이랄까. 마음 다부지게 먹고 시작했다. 내륙으로 향하기 전 거의 마지막으로 해안가를 살짝 걷는 코스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바다 보는 게 이리 소중할 줄 몰랐다. 


첫 코스부터 모슬봉 숲길을 지나 중간스탬프를 찍으러 가는데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려 혼자 망상을 했었다. 혹시 이 산속에 컬트나 이상한 종교집단이 있는 걸까 혹시 북한 간첩? 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할 때쯤 모슬봉 쪽에 군사기지가 있다는 걸 알았다. 군사기지라 지도에도 나오지도 않고 지금생각해 보면 그냥 군가였는데 나 혼자 온갖 설레발을 친 게 좀 웃겼다. 


아침부터 오름을 오르는 건 이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해가 쬐기 시작하는 그 풍경을 보는 게 더 좋다고 해야 하나. 특히 오름 위의 바다는 너무나도 시원하다. 그래 그때 알았어야 한다 오름 정도는 너무 좋은 곳이란 걸. 모슬봉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고라니 세 마리를 만났다. 애기 고라니 2마리와 엄마 1마리가 우릴 계속 쳐다보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그들의 길을 막아서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안녕인사를 하고 우린 곶자왈을 향해 가던 중 가장 마지막 편의점에 들렀다. 오늘 유일 무이하게 무엇이라도 사 먹을 수 있는 곳이어서 표시도 해놓았는데 들어가니 사장님이 우리 둘의 키를 보시곤 윗 공기는 어떠시냐면서 부러워하셨다. 오늘도 덥지만 힘내라는 응원을 받고 우린 곶자왈에 갔고 올레가 만들었다는 길이라고 하니 어떨까 기대하기도 했다.


숲길의 시작은 간세로 꾸며진 파란 문 같은 곳이었는데 뭔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가게 되었다. 숲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돌길이긴 하지만 꽤나 잘 정돈되어 있고 가파름이 없어서 쭈욱 생각 없이 걸어가기에 편했다. 신기하게도 특이하게 생긴 버섯들도 엄청 많았고 산짐승이 나올까 걱정되는 풍경이었지만 다행히도 그러진 않았다. 특히 해를 피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지만 중간엔 소나기도 쏟아져서 급하게 가방 커버를 꺼내기도 해야 했다. 곶자왈 숲길은 생각보다 꽤나 길어서 한숨도 쉬지 않고 걸어야 했는데 중간에는 핸드폰 시그널이 잘 안 터질 거라는 사인이 나와 괜히 날 무섭게 했다. 길의 높낮이가 없으면 우린 더 빨리 걷는 편이라 아주 무서운 속도로 걸어갔지만 돌도 많고 나뭇가지도 조심해야 하는 터라 계속 긴장감을 앉고 쭉 내리 걸었다. 숲길이나 바닷길 오름들이 힘든 건 사실 쉬지 않고 계속 걸어야 해서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11주년의 로맨틱함은 잠시 뒤로 하고 우선 이 숲길을 살아나가자는 일념의 전우애로 우린 곶자왈을 걸었다. 곶자왈을 통과하고 나서도 일반 마을과 도로를 만나는 데는 한참 걸렸고 한 마을의 느티나무 아래밑에서 드디어 숨을 돌리며 우린 거의 기절상태로 뻗었다. 이렇게 오래 말도 없이 걸어본 적이 있을까 싶었다.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데 도대체 이 지역은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것도 없어서 뭘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셰프분이 하신다는 식당에 가게 되었다. 후기에 웨이팅이 좀 있다고 하여 걱정하던 차 딱 적당한 시간에 도착해서 돌문어 비빔밥을 먹었다. 반찬도 너무 깔끔하고 맛있고 모든 음식이 신선하다고 느껴질 정도여서 아무것도 없는 무릉이라는 마을에 이런 맛집이 있다니 감탄 연발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무릉외갓집이 나오는데 딱 옛날의 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것 같았고 무릉의 농가들이 만든 기업이라고 한다. 안에는 기념품도 팔고 엄청 고즈넉하니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 좋다. 여긴 제주에서 나는 과일이나 채소도 구독할 수 있다고 하는데 취지가 너무 좋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한 번쯤 해봤을 것 같은데 아쉽기도 하다. 오늘은 나의 절친이 제주도로 놀러 와서 저녁밥을 같이 먹기로 했고 11주년인 만큼 즐기는 날로 정했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지금 얼른 씻고 나가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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