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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elo Oct 08. 2023

평생 인연

2012 까미노 

2012. 8. 19 (일)


나는 오늘 순례길에서도 꽤나 유명한 사리아라는 마을에 오게 되었다. 이제 순례길이 거의 끝나가는 후반부에 들어서게 되었다. 오늘도 운이 안 좋아 일요일에 도착하게 되어 한산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 왜 큰 도시만 오게 되면 일요일인 걸까. 짝꿍이 추천한 스페인식 고기파이를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일요일이라 파이가게가 문을 닫았다. 심지어 아침엔 다 같이 멤버들과 걸어오는데 길도 헤매었었다. 여러모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길 중간에 나온 수도원을 지나 두 갈래 길이 나왔다. 한쪽은 도로 된 길이고 한쪽은 산길이었는데 솔직히 난 편한 도로길을 가고 싶었으나 짝꿍과 같이 걷다 보니 언덕진 산길을 걷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한 길을 택하고 싶었던 나는 군말 없이 따라가면 될 것을 괜히 투정 부리고 짜증 내게 되었다. 분명 이 친구도 몸이 힘들었을 텐데 내 눈치만 보고 있어 나 혼자 마음이 자연스레 풀렸다. 정말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못되게 구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순례길이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우리의 체력도 끝을 향해 가는 듯했다. 앞으로 3일 더 30km씩 걸어내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사리아라는 곳은 꽤나 커서 짝꿍과 같이 병원을 가게 되었다. 베드버그에 물려 며칠간 잠도 못 자고 거의 울면서 걸은 터라 병원에서 주사를 크게 한방 놔주길 바랬으나 아쉽지만 처방전만 받았다. 다행인 건 짝꿍이 스페인 사람인 덕분에 모든 의사소통이 수월했다는 것이다. 약국도 찾아서 알약과 크림을 사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늘도 돈을 훅훅 쓰게 된다. 베드버그를 전멸시키려면 모든 옷을 다 빨고 햇빛에 쨍쨍 말려야 한다. 숙소에 도착하마자 가방도 건조하고 대대적인 청소를 했다. 안 그래도 생리를 하고 있어서 몸이 피곤한데 베드버그에 물리니 최악의 최악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인순례자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딸과 어머니가 같이 오신 경우도 있었고 열정 넘치는 경상도 체대 분들도 있었다. 다양한 분들을 만나니 활기가 넘쳤고 특히 한국어를 쓰다 보니 얘기하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나도 한국인그룹과 순례를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스페인 이탈리아 친구들과 같이 걸으면서 가족 같고 좋긴 하지만 여전히 그 속에서 편하지는 않았다. 모국어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편안함을 주는 것일까. 이럴 거라면 그때 같이 걷자는 말에 거절하고 혼자 걸었어야 했을까.


저녁을 먹고 나서는 한 한국인이 저녁 10시에 출발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 저녁에 걷는다는 게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혼자서 걷는 그 모습이 순간 멋지고 부러워 보였다. 한국인들과 웃으며 떠들 때면 짝꿍은 괜스레 내 주변을 서성대며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조차 괜히 짜증 나는 마음이 들었고 내가 이 친구와의 관계를 끝내야 되는 되는 건지 고민됐다. 왜 나는 달아나고 싶은 걸까. 24시간을 붙어 있으니 나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해서 이랬던 걸까. 


오랜만에 같이 걸었던 멤버언니도 만나게 되어 오랜만에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다. 그간의 고민들을 많이 얘기했다. 나는 언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경험하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자유로워보이는 언니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대비되어 움츠러들었을 때 언니는 나에게 얘기해 줬다.


넌 평생 기억에 남을 인연을 만났잖아


순간 나의 모습이 많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스치고 지나갈 인연이 아닌 정말 기억에 남을 인연을 만난 것인데 나의 환경에 감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복에 겨워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 진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나에겐 필요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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