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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mul Sep 03. 2024

부부 상담도 합니다

부부 상담을 시작했다. 1년 전에도 6개월 정도 했었다. 같이 겪은 상황임에도 그가 받아들이는 것과 내가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었다. 운이 좋게도 상담을 해 주신 선생님을  한스가 상당히 만족스러워했다. 나 또한 그 분과 얘기를 나누고 나면 속이 후련해졌다. 10년이 넘게 같이 살아도 아직도 이해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종종 발생한다. 과연 내가 알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양파 같은 인물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한 번은 아이들과 남편이 독감에 걸려  열흘 가까이 간호를 해야 했다.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받은 약으로 치료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의사였던 시아버지는 가족이 감기에 걸리면 절대 약을 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저 소화가 쉬운 걸 조금 먹고 물을 마시고 푹 쉬는 게 다였다고 했다.  평소 병원약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도 그의 방식에 공감한다. 

 독감에 걸려 남편과 아이들이 고열에 시달리고 잠을 자지 못했다.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아 주며 밤새 간호를 했다. 쪽잠에서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면 거실에 세 명이 눕는다. 이층으로 올라갈 힘도 없다면서 말이다. 이불을 덮어주고 베개를 가져다주고 쉬도록 한다. 미지근해진 레몬을 잘라 거즈손수건으로 감싸 열이 나는 몸을 닦아 준다. 하와이에서 많이 쓰는 민간요법인데 해열 기능을 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또 점심을 차린다. 또 오전과 같은 스케줄을 보내고 나면 저녁이 되고 밤이 찾아온다. 열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마를 또 물로 닦아 준다. 이렇게 열흘을 보내고 나니 아이들과 남편은 몸을 회복했지만 내 몸과 정신상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간호하는 내내 '나도 독감이 걸려 이렇게 간호받고 싶다'를 생각했다. 간호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는 정말 쉬고 싶었다. 

 그러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니 머리 식히러 서울에 다녀가면 어떠냐는 말이 나왔다. 맞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하며 한스에게 이번 주말에 서울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서울 가는 건 문제없어. 그런데 아이들이 아직 다 낫지 않았고 나도 컨디션이 아직 완벽하지 않아. 내 음식 아이들 음식 따로 준비하기 할  정신이 없어." 

"내가 열흘 넘게 고생한 거 안보였어? "

"가지 말라는 게 아니라 상황이 좀 어렵다고"

결국 나는 화를 내고 말았다. 냉랭해진 상태로 며칠을 보내고 상담 시간이 돌아왔다. 선생님께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얘기를 다 듣고 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주셨다.

아내분은 이번주에 서울에 간다는 말에는 '나 너무 힘들었어. 좀 쉬고 싶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 제겐 들렸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였다. 나는 누군가에게 힘들다. 나 좀 도와줘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당연히 내게 부여된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지쳐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선생님께서는 한스에게도 말을 건네셨다. 

"아마도 남편분은 이번주 서울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듣고 무척 당황한 것 같아요. 모든 걸 계획을 짜고 거기에 맞춰 행동을 하는데 갑작스러운 상황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서요. 영희 님이 쉬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케어를 할지? 식사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현실적으로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이 떠올라서요." 

아마도 영희 님이 남편에게 

"한스 내가 그동안 좀 많이 힘들었어. 친구 좀 만나서 머리도 좀 식히고 싶어. 나도 좀 쉬고 싶어. 혹시 내가 언제 서울에 가면 괜찮을 것 같아?'라고 말을 거 냈다면 남편분은  그 상황을 더 쉽게 받아들였을 거예요. 

상담이 끝나고 우리는 서로를 따뜻이 안아주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힘듦을 위로받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이들의 완벽한 회복은 시간이 더 걸렸고 결국 나는 서울에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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