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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mul Aug 27. 2024

관리 끝판왕 한스


여름이 시작되면서 아침 햇살이 어느 때보다 눈부시다. 창을 통과한 햇빛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벌써 3주가 넘어간다. 명상. 이 단어는 내 인생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얼마 전 운동을 시작했는데 일명 '뱃살 빼기 프로젝트'다. 이걸 진행하는 강사는 단지 운동만 가르쳐 주는 게 아니었다. 아침 명상, 건강한 식단, 유산소 운동, 감사 일기 쓰기를 하도록 했다. 기상 후 곧바로 명상을 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 빈방에 눈을 감고 앉아 강사가 했던 것을 그대로 하는 걸 상상했다. 하지만 해보니 나는 초보자가 맞다. 머릿속에선 사람으로 붐비는 장터 마냥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어지럽힌다. ‘조금만 더 잘걸, 아침은 뭘로 하지, 아냐 숨을 먼저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라고 했어, 참오늘 윤슬이 공개 수업 있다 등등. 그 짧은 시간에 잡다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더 구겨진 느낌이다.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을 하고 생각들을 몰아내려고 해 본다. 겨우 명상을 수행하고 나를 스스로 안으며 칭찬을 하고 끝낸다.

이걸 한스는 3년을  꾸준히 했다. 6시에 일어나 명상을 한 후 맨발로 해변까지 걸어간다. 바다 수영을 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는다. 운동을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다들 잠든 새벽에 날씨, 온도, 기분을 가리지 않고 이걸 해냈다. 나는 30일 동안 하는 것도 막바지에 접어드니 온갖 핑계를 대며 못하는 이유를 찾고 있는데 말이다. 시작한 첫 주는 꼭 해내고 마리라는 열정이 가득해 루틴을 유지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글쓰기 수업의 과제도 아침으로 옮겨 명상을 끝내고 바로 하니 글도 잘 써지는 듯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변수들이 튀어나왔다. 해가 일찍 뜨니 아이들도 덩달아 빨리 침대에서 나왔다. 거실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물 마시다, 화장실을 간다, 심지어 내 옆에 앉아 책을 읽기까지 하니 집중도가 떨어졌다. 온전한 고요를 즐기기가 어려워졌다. 더 빨리 일어나는 것만이 답인가? 잠을 사랑하는 내겐 6시가 한계 같은데.

남편은 이 모든 방해 요소와 유혹들을 어떻게 물리쳤을까?

그는  지난 7년간 필라테스는 6년, 명상은 3년, 그리고 식이요법은 1년 반을 넘게 하고 있다. 남편은 잠을 제대로 못 잔다며 꽤 오랜 시간 내게 하소연했다. 쉽게 잠이 들긴 했지만 새벽 한 두 시가 되면 어김없이 깼다. 그리고 3시간 가까이 잠을 못 이루다가 피곤함에 못 견뎌 곯아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반면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자는 편인 나는 그의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수면 장애를 겪으니 컨디션이 좋을 리 없다.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가 반복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성인이니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아빠의 기분 상태에 따라 얘들이 행동하게 되자 안타깝고 화까지 났다. 남편은 잠을 특히나 못 잔 날이면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다고 했다. 한 번은 남편이 슬아와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하다가 깜빡 졸아 달리던 1차선이 아닌 2차선에 있는 걸 발견하고 충격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나도 정신이 혼미할 만큼 아찔함을 느꼈다,

결국 상태의 심각함을 느끼고 수면센터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수면의 질 상태를 체크했다. 의사는 남편에게 ’ 자면서 몇 번이나 깨는 것 같냐 ‘고 물었다. 그는 ’ 삼사십 번 정도‘라고 대답했는데 결과에서는 ’ 삼 백번이 넘는다 ‘라고 나왔다. 한스에게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며 의사는 안타까워했다. 그동안 잠을 잘 자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던 나날들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그는 나를 안으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약물을 처방받았지만 이 마저도 남편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전문가의 코칭을 받으며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외식은 하지 않았고 음식의 간은 소금으로만 했다. 설탕, 계란, 유제품, 밀가루, 양파, 마늘, 등등은 그가 먹지 않아야 할 리스트였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오손 도손 먹는 재미는 이제 사라졌다. 그런 즐거운이 사라지니 나도 요리하기가 싫어졌다. 따로 음식을 준비하다 보니 같이 먹는 시간을 놓치기도 일쑤였다. 말로써 그에게 이런 불편함을 토로하진 않았지만 그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이렇게 먹는 거 너무 힘들어, 하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크리스마스, 생일도 오랫동안 같이 즐겁게 보내고 싶어. 지금 고치지 않으면 나는 오래 못 살 것 같아"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거기까진 생각도 못했다. 남편은 이런 식사를 일 년 반이 넘도록 꾸준히 하고 있다. 운동 프로젝트에서 한 달 동안만 밀가루와 설탕을 끊어보라 해서 하고 있는데 나는 끝날 날짜만 세고 있다. 한스는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는 식단을 유지하면서 수면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잠을 잘 잘 수 있으니 기분도 오락가락하지 않는다. 우리의 관계도 가족들도 더 화목해진 게 느껴진다. 그의 상태가 좋아지니 나도 그의 요리법에 관심을 갖고 가끔은 조리법을 따라 하기도 한다.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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