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llmul Jul 30. 2024

맨발 걷기(earthing)

여름이다. 우리 집은 협재 바닷가에서 10분이 안 되는 거리에 있다. 원하면 매일매일 바다를 볼 수 있다. 남편의 산책로는 협재바다와 금능바다까지 이어지는 해변이다. 자신을 '써머보이'라고 칭할 만큼 바다를 좋아하고 바다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즐긴다. 우리가 사는 집은 운이 좋게도 바다와도 가깝지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도보  10분이면 충분하다. 한스는 아침이면 아이들의 등굣길에 같이 하고 해변 산책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몇 년 전 한스의 한쪽 발등의 뼈가 볼록 올라온 적이 있다. 시아버지가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원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의학적인 도움보다는 자연치유를 더 선호한다.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면 일단은 조사를 많이 한다. 발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맨발로 걸으면 효과가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보다.  그 이후 한겨울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맨발로 걸어 다녔다.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학굣길도 산책길도.  동네 사람들은 그런 한스의 보며 거의 다 한 마디씩 했다." 괜찮아요? 유리 안 찔려요? 다치면 어떻게 해요?"등등의 걱정을 해주었다.

다행히 몇 년을 그렇게 걸었지만 밖에서 유리를 밟은 적은 한차례도 없었다. 오히려 집안에서 깨진 유리에 밟혀 한번 다쳤을 뿐.

그러다 나와 다툼이 난 적이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모임이 있어 온 가족이 초대를 받아 가는 자리가 있었다. 출발을 하려고 차를 타는데 한스가 맨발로 나오는 거였다.

"그래도 모임인데 신발은 신으면 좋겠는데"

"왜? 난 맨발이 좋은데. 난 이대로 갈 거야"

난 그런 그가 못마땅했다. 자리에 맞춰 옷차림을 갖춰 입는 법을 모르는 거냐부터 해서 논점을 흐리는 말들이 오가다 결국은 남편은 가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아이들만 데리고 출발했다. 자신이 옳다고 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 특히나 배우자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너무도 짜증이 났다.

한 번은 윤슬이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학교에 데려다주는 거 아빠 말고 엄마가 했으면 좋겠어?"

"왜?"

"아빠가 웃통도 벗고 맨발로 오니까 아이들이 다 쳐다봐"

여름이면 협재 해변은 수영복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긴 하다. 남편은 비타민 D를 흡수하겠다는 목적으로 학교 가는 길에 웃통을 벗고 가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한국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할 만한 이슈였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외국인이니까 예외로 보는 듯했다. 윤슬이가 언급한 내용을 조심스레 전달하자 그걸 의식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이후로는 옷을 입고 갔다.

 한 때 남편이 하는 행동을 내가 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다. 그가 하는 행동들들의 말미엔 내가 더 부끄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맨발로 다니는 것이며 웃통 벗고 다니는 것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그런 걸 발견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났을 때 그는 그, 나는 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계기는 뚜렷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행동은 내가 한 행동이 아니다고 생각하니 내가 불편해하거나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남편은 동네에서 '맨발'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이들과 동네를 산책하다 이웃 할머니들께  인사를 나눌 때면 "요새 맨발은 어디 갔어?"라고 물으신다. "돈 벌러 갔어요!" 하며 웃는다.  맨발 걷기는 확실히 여러 가지 좋은 효과가 있다. 특히나 해변에서 찰랑거리는 바닷물을 걸으면 불면증, 시차적응, 감기 등등에 좋다는 걸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다. 한스의 발등은 몇 개월의 맨발 걷기 때문인지 눈에 띌 정도로 발등이 내려갔다.

가끔 나도 해변에 맨발 걷기를 하러 가는데 그런 나를 보며 한스가 한마디 한다. "요새 맨발 걷기 유행인 거 알아? 내가 시작해서 사람들이 따라한 거야!" 라며 웃음을 보낸다.

이전 01화 아빠는 우리를 안 사랑하나 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