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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llmul Jul 23. 2024

아빠는 우리를 안 사랑하나 봐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이 아침저녁으로 빛난다. 저녁을 5시가 조금 넘어 먹고 나면 아이들은 씻고 책을 고른다. 시간이 남으면 보드 게임을 좀 하다가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 뽀뽀를 한다. 불을 끄고 나오면 빠르면 7시 30분 늦어도 8시 30분이다. 아이들은 그때부터 잠이 들고 아침 6시 30분이나 7시에 일어난다. 이게 우리 집 아이들의 저녁 잠시간 루틴이다.

 한스와 결혼하기 직전 3개월 동안 독일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공항 출입국 관리소에서 "왜 이렇게 오래 머무냐? 돈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보여달라며" 무례하게 굴었던 직원이 아직도 생각난다. 혹시나 내가 불법 체류자로 남을까 걱정을 한 것일까? 서른네 살의 독신 여성의 여행을 친절히 바라봐 주지 않았다. 독일 뿐 아니라 프라하 벨기에를 여행하며 한껏 자유를 만끽한 마지막 혼자 한 여행이었다. 한스의 누나들, 형의 집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집을 돌며 3개월을 채웠다. 대부분의 가정엔 두 살 아기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나이 대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가장 인상이 깊었던 점은 수면 습관이었다.  9개월 아기는 저녁 6시면 침대에 누웠고 중학생 아이도 7시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 8시면 잠을 청했다.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풍경이라 기억에 남았다.

 순진했던 나는  아기들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그 시간에 다 자는 줄 알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게 엄청난 오산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루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피땀을 흘리며 노력을 해야 했고 시간을 투자했어야 하는지는 부모가 되어서야 알게 됐다.

 독일은 유독 잠자는 시간에 대해서만큼은 양보가 없는 듯했다. 파티가 있는 날이나 주말이면 어느 정도 감안이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시간은 다 지키는 듯했다. 윤슬이 6개월이 되기 전까지 수면 습관을 들이기 위해 외출도 쉽지 않았다. 오전 오후 낮잠을 재우다 보니 친구들을 만난다 해도 2시간을 채우기 전에 집에 서둘러 와야 했다. 식사 준비를 하고 씻기고 재우는 시간을 맞추려 하다 보니 나는 이건 감옥 생활인가?라는 생각이 하기까지 이르렀다.

수면 독립은 2살이 되기 전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스의 생각에 나는 쉽사리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한국에선 엄마 아빠와 같이 누워 잠을 자는 게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대립각이 형성되었지만 결국 나는 그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비로소 주어지는  자유시간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그걸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여름이 시작할 무렵 위의 루틴대로 아이들을 재웠다. 그날은 한스가 재우는 날이었다. 책을 읽어주고 나오려는데 슬아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는 우리를 안 사랑하나 봐. 밖에 아직도 밝은데 우리한테 자라고 하니까"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긴 했지만 슬아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6살이 채 안 된 아이에겐 노는 시간도 중요하니 말이다. 9살이 된 슬아는 수면습관에서 오는 안정적인 리듬을 몸소 체험하는 계기가 있었다. 친구가 파자마 파티로 놀러 온 날이 있었다. 아이들은 12시까지 놀겠다면 으름장을 놓고 나를 협박하기까지 했다. 절대 방으로 들어오지 말라며. 너무 귀엽기도 하고 해서 그대로 둔 적이 있다. 흥분한 아이들은 12시가 좀 되기 전에 잠이 들었지만 6시부터 일어나 놀았다. 문제는 그날이 아니었다. 그다음 날 아이들은 저녁 6시도 되기 전에 짜증이 부리고 힘들어했다. 그런 경험 이후로 파자마 파티가 있는 날은 9시에 잠을 자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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