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고 쓰다
(들여다보기, 문성해)
문성해 시인의 시, 들여다보기는 방안에 꽃무늬 벽지를 새로 도배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시인은 곤충들이 벽지의 꽃 무늬를 진짜 꽃으로 착각하고 찾아가다 방충망에 걸려 날개가 부서졌다고 한다. 나도 착각하여 어뚱한 것을 쫓아갈 때가 있었다.
(들여다보기, 문성해)
곤충들이 방충망에 붙어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곤충은 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방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방충망이 가로막고 있어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도 날아갈 수 없다. 곤충들은 얼마나 애가 탈까. 나도 이렇게 애가 탄 적이 있다.
내게 꿈, 그것은 쇠창살 안의 꽃이었다. 내겐 쇠창살을 비집고 들어갈 힘이 없었다. 쇠창살을 뜯어냈더라면 들어갈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땐 생각도 하지 못한 방법이다. 곤충이 운이 좋아, 방에 들어갔다고 하자. 곤충은 꿀을 빨아먹을 수도 꽃잎을 갉아먹을 수도 없다. 벽지에 그려진 가짜 꽃이니까.
19살의 내가 가로막고 있는 쇠창살을 자르거나 뜯어냈다면 꿈, 그 꽃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갈망하던 그 꽃, 벽지에 그려진 가짜 꽃이 아니라 산과 들판의 진짜 꽃이었다고 나는 주장하지 못한다. 가까이 다가가 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갈망하던 그 꽃, 19살의 내겐 진짜 꽃이었다고 해도 지금의 내겐 흘러간 냇물이고 기억 속의 꽃이라 진짜가 아니다. 나는 지금도 찾아가고 있다. 나를 흡족하게 해 줄 진짜 꽃을.
(들여다보기, 문성해)
나는 알게 되었다. 언젠가 나를 흡족하게 해 줄 진짜 꽃은 없다는 것을. 방충망 앞에서 가짜 꽃으로 도배된 방 안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다가 날개가 찢기고 부서진 것을. 날개를 수선할 충분한 시간이 없는 것을. 그래도 진짜 꽃을 찾아 날아가려고 애를 태운다. 어디로 가야 진짜 꽃을 찾을 수 있는지 몰라 애를 태운다. 이때 한 철학 선생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 철학 선생의 이름은 죽음이다. 죽음이 말했다.
“진짜 꽃, 가짜 꽃을 가리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마. 숨을 들이쉬고 있다면 들숨을 꽃이라고 여겨. 숨을 내쉬고 있다면 네 날숨, 그것도 꽃이야.”
“들숨 날숨이 뭐라고?"
“사람은 누구나 꽃을 찾으러 다니지. 하지만 찾지 못할 거야.”
“그럼 살아갈 의미가 없잖아. 당장……”
“진짜 꽃은 직접 만드는 거야. 네가 하는 일들이 다 꽃이 된다고. 언젠가 닥칠, 그날에 넌 꽃 한 송이를 남겨두고 떠나가게 될 거야. 그 꽃이 진짜 꽃이야. 애써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