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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복희 May 19. 2023

강이 흐르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악양마을

앞집 뒷집이 없는 마을

 기네스 기록에 도전할까?     

  배산임수는 아니다. 강을 뒤에다 두고 앞으로는 여항산을 저 너머에 두고 있는 풍수를 거스르는 남고북저의 악양마을이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영락없는 배산임수다. 마을의 등 뒤로 남강의 커다란 둑이 정다운 뒷산 같다. 치수를 위해 만든 둑이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자처럼 떡 버티고 있어 남쪽을 보고 있는 마을은 늘 따뜻한 햇볕이 길게 든다. 

  악양마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 중의 하나는 기네스 기록에 도전해도 좋을 만큼 긴 마을의 길이다. 기차처럼 늘어선 집들은 5리가 족히 넘는다. 마을은 둑을 기대고 한 집 한 집 나란히 줄지어 있다. 앞집 뒷집이 없는 70호 남짓의 마을이다. 마을 끝에 있는 파프리카 하우스에서 다른 끝자락에 있는 표고버섯 농원까지 가려면 차를 타야 한다. 군내버스로 한 코스를 훌쩍 넘겨 걷기에는 먼 길이다. 스무 살에 동네총각과 결혼한 83세의 김고연 할머니는 “옛날에는 아침묵고 웃동네 꺼정 가모 점슴때다 아이가”한다. 부지런한 할머니의 남새밭에는 볕이 잘 들어 채소들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처녀뱃사공의 사연을 품은 강은

 낙동강이 아닌 남강이었다!     

  악양마을은 집성촌이 아니다. 1911년 제방이 만들어지고, 1921년 수리시설이 완비되면서 한 집 한 집 들어와 자연발생적 촌락을 만들었다. 그래서 뚜렷한 문중이 만들어지지 않고 분산씨족으로 각자 생업에 헌신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전에는 이무리나루(寅頭津), 북실나루, 악양나루 등 세 개의 나루에서 목선으로 의령과 대산, 법수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래서 길을 지나던 윤부길이 “처녀뱃사공” 노래도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남강을 가로지르는 백곡교가 의령과 연결하는 길을 내었고, 법수와 대산을 연결하는 악양교가 있어 사통팔달의 길을 갖게 되었다.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천하절경     

  마을의 뒷산 격인 둑은 남강의 물줄기를 가둔 둑이다. 봄에는 백일홍 꽃양귀비가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찾는 사람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늘 꽃이 피어있어 둑길을 찾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둑 위의 만들어 놓은 풍차가 이국적 풍경을 만들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눈을 들면 남강의 아름다운 물결이 햇볕을 밭아 은가루를 뿌리는 것처럼 반짝인다. 가히 천하절경이라 할만하다. 

  남강과 함안천이 만나는 곳에 ‘악양루’가 있다. 옛사람들이 악양이라 부를 만큼 경치가 좋다. 악양루의 절경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1951년 악양마을이 되었다. 강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둑길은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도 좋다. 햇살이 두터워지는 봄날 강둑을 사람들이 천천히 걷는다. 맨발로 걸어도 좋을 만큼 보드라운 흙의 느낌이 좋다. 강에는 호연지기도 고요함도 느림도 모두 있다. 봄볕만큼 따뜻한 마을 사람들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탈출되는 슬로시티가 바로 악양마을이다.     

풍요로운 자립마을     

  땅이 비옥한 만큼 생산물도 다양하다. 벼농사 외에도 하우스가 즐비하다.   파프리카 하우스는 마을 안쪽에 유난히 높게 지어져 있다. 7월 중순에 수경재배로 심어 놓으면 이듬해 6월까지 매일 익어가는 파프리카 따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농약을 쓰지 않고 미생물 제제로 충해방지를 하는 파프리카를 농장주 (변호근)가 한 개를 따서 물에 슬쩍 씻어 먹어보란다. 신맛이 없고 달콤하고 아삭한 맛이 과일 같다. 요즘에 과일보다 칼로리가 낮아 샐러드로 많이 먹어 물량이 딸릴 정도란다. 파프리카는 색깔이 알록달록하다. 이 색은 아름다운 조화에서 뿐만 아니라 영양도 다르다. 빨간색은 노화예방, 주황색은 피부미용, 노란색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모든 것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색은 어떤 영양분을 품고 있는지 스스로를 드러내는 당당함이다. 마을에서 생산하는 파프리카는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하지만 일부는 내수용으로 판단다. 

  과일인지 야채인지 애매한 토마토 하우스도 있다. 마을의 이장님(조양래)이 재배한다. 한 해에 두 번을 심는데, 레드토마토는 8월 중순에 심어서 12월 말까지 생산한다. 과육이 단단하고 껍질이 얇고 빨간 색깔이 돋보여 샐러드용으로 일본으로 주로 수출한다. 2기 작은 내수용으로 흑토마토를 생산한다. 항산화물질의 함량이 높고 베타카로틴, 라이코펜, 비타민C가 보통의 토마토보다 1.4배나 많아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12월 말에 심어 3월부터 6월까지 수확한다. 파프리카 하우스처럼 친환경적으로 재배하고 시원하고 맛있어 인기가 좋다. 

  비어 가는 다른 농촌마을과는 달리 외지인의 이주가 비교적 많은 마을이다. 외지에서 이주민과 원주민이 반반 정도로 외부유입인구가 많다. 오래 살아온 원주민은 비교적 나이가 많지만 이주민은 비교적 젊다. 아라뜰 표고농원을 하는 조양래, 양영희 부부도 6년 전에 이주해 왔다. 경치가 좋아 눌러앉았다는데 지금도 만족하고 산단다. 외지에서 와서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마을 일을 같이하면서 융화되었고, 지금은 전혀 이질감이 없는 마을 주민이 되었다. 처음에는 하우스 한 동으로 출발했지만 품질에 인정을 받아 지금은 다섯 동으로 늘려 재배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마을 사람들이 이교수라 부르는 이재명 씨는 사진, 서각, 장승 등의 작품 활동과 후배를 양성하는 예술가이다. 마을에 정착한 지는 벌써 14년째다. 경치가 좋고 조용하고 도시와 적당한 거리감이 있어 작업하기 좋을 것 같아 이곳에 터를 잡았다. 작업실 앞길에는 장승이 즐비하게 서 있어 마을을 걷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주기적으로 장승학교를 열기도 하고 생활목공은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전화를 미리 하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외지인이 마을에 잘 융화하고 있는 증거는 “악양곳간”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을 청년 12명이 출자한 마을기업으로 주로 외지에서 온 청년들이다. 지역농산물을 판매하고 악양둑을 달릴 수 있는 자전거를 대여하고 푸드트럭 사업을 하고 있다. 3명을 고용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마을일자리 사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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