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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준 Jan 19. 2023

왜이리 여행육아에 목숨을 거는 거에요?

“여행은 우리의 ______이에요”

 

첫 해 떠났던 이탈리아 자동차 일주


우리의 여행육아는 코로나 19 펜데믹에 시작되었다.  남편은 한국이 한창 코로나로 난리가 났을 때 이탈리아로 발령이 났다. 당시 나는 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아이들과 두 달 반 동안 독박육아를 했다. 그 시절 독박육아는 그야말로 전쟁 그 자체였다. 코로나로 어린이집과 학교는 문을 닫았고, 제일 만만했던 키즈카페 역시 갈 수 없었고, 문 밖을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 둘, 그것도 두 살 터울 형제를 나 혼자 보는 건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엄마라면 해내야지. 그렇게 내가 아이 둘과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이탈리아로 떠난 남편은 마스크도 끼지 않고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게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이제 두 달 뒤면 마스크로부터 해방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생활한 지 3년차, 코로나 팬데믹 19로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한 번도 한국에 가지 않았다. 갈 곳이 너무나 많아서 도저히 한국에 갈 시간적인 여유와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살만 하니 저렇게 여행을 자주 다니는 거라고……굳이 변명을 하자면, 우리가족의 우선순위는 쇼핑도 사교육도 골프도 아니다. 비싼 사치품 살 돈으로 비행기표를 끊고, 영어과외 수학과외 할 돈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골프 1년 회원권 끊을 돈으로 박물관 티켓을 구입하는 거뿐이다.


2020년 2월 말 아이들과 남편이 있는 이탈리아로 넘어왔다. (비자 문제로 남편이 먼저 들어가고, 우리는 3개월 뒤에 들어왔다) 남편의 회사일로 4년동안 밀라노에서 살아야 한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4년을 살다니! 정말 꿈만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발령이 나서부터 한껏 들뜬 마음은 19년말 출국 직전 코로나19로 흔들렸고, 도착하고 일주일 뒤에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이탈리아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이탈리아에 코로나가 상륙했다. 그때는 내가 코로나를 달고 왔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집 안에 갇히게 되었고 마트에는 사재기 현상으로 식료품 코너는 텅텅 비었다. 집 밖을 나가려면 무조건 자술서를 지참해야 했다. 그마저도 장보기와 강아지 산책 같은 필수적인 것 외에는 불가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울리던 앰뷸런스 소리이다. 이탈리아의 앰뷸런스 소리는 한국의 앰뷸런스 소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말 쩌렁쩌렁 울려서 귀가 따가울 지경인데, 이런 앰뷸런스 소리가 아침 일찍부터 새벽까지 끊임없이 울렸다. 오죽했으면 잘 때 앰뷸런스가 소리가 울리는 꿈을 꾸며, 가만히 앉아있을 땐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교민이나 유학생 그리고 남편 회사의 가족들이 모두 떠났다. 하지만, 우리는 이탈리아에 입국한지 고작 일주일이라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 남았다.

정말 우리 가족만 남았다.


2020년 6월 강도 높던 봉쇄가 완화되었다. 해외 여행은 안되지만, 국내여행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 우리는 그 동안의 한을 풀기라도 하는 듯 정말 쉴틈 없이 다녔다. 평일이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남편은 출근을 했다. 그리고 나는 여행지를 물색하고, 호텔을 알아보고, 여행루트를 짰다. 본문에도 언급하겠지만 나는 여행에 있어서만 선택적 J라 여행 플랜을 기획하는데 진심이었다. 정말 여행사에 취직했으며 나 정말 잘했겠다 라는 생각이 들만큼 열심이었다. 유럽이라는 나라, 그것도 내가 살게 된 이탈리아 밀라노는 여행 다니기에 지리적으로 정말 훌륭했다. 차로 4시간이면 가까운 나라 어디든 갈 수 있으니 갈 곳은 넘쳐났고 휴일과 주말은 턱없이 짧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거나, 새벽 6시 전에 일어나서 운전대를 잡았다.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첫 해는 해외여행이 안되던 때라 이탈리아 여행을 정말 많이 했다. 밀라노 근교 도시를 시작으로 남부 자동차 일주까지 그야말로 가도가도 갈 곳이 넘쳐났다.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통일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도시마다 특색이 있고 가는 곳 마다 다른 나라에 놀러 온 듯 새로웠다. 도시마다 다른 역사, 도시마다 다른 분위기, 도시마다 다른 음식과 전통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얻게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탈리아 여행 다니던 시절이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내가 이탈리아에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이탈리아는 정말 다니면 다닐수록 양파 같은 나라다. 어딜 가나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땅을 푸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우리에게 “남는” 여행지가 어디인지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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