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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an 07. 2022

편식쟁이의 천국 : 서브웨이

토마토는 빼고 할라피뇨는 조금 더 주세요

나는 햄버거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토마토를 싫어할 뿐이다. 물론 대부분의 햄버거에는 토마토가 들어간다. 그게 바로 내가 패스트푸드점에서 바짝 긴장하게 되는 이유다. 


얼마나 많은 햄버거집 직원들이 '토마토는 빼 달라'는 나의 요청을 잊었던가? 햄버거를 주문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토마토를 빼 달라고 말하고, 완성된 햄버거에 토마토가 빠져 있는지 확인하는 동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러고도 햄버거를 열었는데 토마토가 들어 있으면 대략 난감하다. 카운터는 밀려드는 주문을 받느라 바쁘므로 다시 가서 토마토 빼 달라고 하기도 면구스럽다. 결국 손가락에 소스를 묻혀가며 토마토를 슬쩍 빼고 먹는데,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같이 식사하는 사람의 비위도 걱정된다.


어째서 키오스크에 '토마토 추가' 버튼은 있으면서 '토마토 빼기' 버튼은 없는 걸까? 꼭 토마토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닐 텐데 '토핑 빼기' 버튼이 없다는 건 편식쟁이로서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몇 안되는 글로벌 패스트푸드 브랜드 중 나의 편식할 권리를 매우 충실하게 보장해 주는 브랜드가 있었으니 바로 서브웨이다. 빵부터 소스까지 내 맘대로 고를 수 있는 점도 좋지만 가장 좋았던 건 채소를 넣기 전에 직원이 이렇게 물어보는 거였다. "안 드시는 채소 있으세요?" 


내가 가리는 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이렇게나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태도로 고려해 주는 외식업체는 여태까지 없었다. 내가 토마토를 빼달라고 하면 직원은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토마토를 넣지 않은 샌드위치를 만들어준다. 서브웨이에서는 내가 토마토를 안 먹는 게 '당연히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여겨져서 좋다. 당연히 오이를 빼든 올리브를 빼든 그건 주문하는 사람의 자유다. 


서브웨이에서는 어느 직원도 내 샌드위치에 토마토를 넣지 않았으므로 나는 곧 서브웨이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고객의 입맛을 존중하는 사람들이야, 하고. 서브웨이에서 어떤 채소를 뺄 지 물어보는 질문을 들을 때 나는 서브웨이 창업주를 생각한다. 그도 가리는 게 많은 입맛이었을까 어땠을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가맹점주가 직원들을 교육하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고객이 안 먹는 재료를 빼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내용도 분명 포함되어 있겠지.


사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일도 상당히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골라야 할 선택지가 너무도 많고, 직원들은 내 대답이 조금만 늦어져도 뾰족한 눈빛으로 날 바라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 드시는 채소 있으시냐'는 그 질문 하나에 내 입맛은 존중받을 수 있기에 나는 다시 서브웨이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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