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유럽여행, D+4
오늘은 일요일이라 조금 여유를 부린다.
런던 한인교회에 일찍 도착해서
교회 주변을 둘러본다.
근처에 셜록홈즈 박물관을 발견한다.
꽤 유명한지 입장 대기 줄도 있다.
들어가고 싶어 입장료를 찾아봤는데
£20가 넘어서 그냥 포기.
옆 건물에 The Beatles 굿즈샵이 있어서
들어가 본다.
자제력을 잃고 비틀즈 엽서와 스티커를 산다.
굿즈샵을 나가려는데 비가 내린다.
오늘 비 소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금방 그치거나 조금 오겠거니 생각해 나는
비니 하나만 챙겨 나왔다.
영국 사람들은 웬만하면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거리에 온통
우산 쓴 사람들만 있다.
우산을 쓰고 가는 영국인들 사이로
나는 비니 하나에 의존해 길을 건너
비를 피해 근처 카페로 향한다.
(나중에 알았는데 내가 건넌 횡단보도가
Abbey Road였다...)
덕분에 영국의 첫 Rainy day를 제대로 즐겼다.
카페 안은 아담하고 아늑했다.
비로 젖은 코트와 비니를 툭툭 털고
따뜻한 커피와 빵으로 몸을 녹인다.
글을 쓰다 교회로 향한다.
런던 숙소에서 만난 D와의 약속 장소로 향한다.
D는 나와 성격이 정말 다르다.
D는 무던하고 과묵하고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D가 나보다 나이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참 어른스럽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디저트와 음료를 즐긴다.
맛있는 디저트에 감탄하고 좋아하는 D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며
그녀의 소녀스러움에 함께 웃는다.
D와 함께 런던 소호를 걷는다.
우리는 재즈클럽에 함께 가기로 했는데
아직 공연 시작 시간이 한참 남았다.
비가 오는 소호 거리를 걸으며
M&MS 팝업스토어와 기념품샵을 구경하고
유명하다는 한 라이브펍에 들어간다.
외관으로 보기엔 그리 커 보이진 않았는데
내부가 정말 깊고 크다.
우리는 간신히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과묵한 D의 이야기에게 나는 질문한다.
담백하고 덤덤한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높고 낮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일부러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닌
본래 그녀의 성격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D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재즈클럽으로 향한다.
재즈클럽에 도착한 우리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무대 앞좌석으로 향한다.
이미 앞자리는 만석이다.
크지 않은 재즈클럽에서 사람들 사이에 속에서
우리는 서서 음악을 감상한다.
운이 좋게 무대 코앞 자리가 빈 것을 본
D의 재빠른 캐치 덕분에 명당자리에 앉았다.
D와 또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나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D가 말한다.
"즐겨요"
조용한 D와 이야기를 하면 D는 자꾸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곤 했다.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
불편했는지 아니면 정적이 흐르는 것이 불편했는지
나는 그럴 때마다, 주절주절 아무 말을 내뱉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됨을,
설명하지 않아도 됨을 알고 있기에
항상 마음속으로 과묵해지길 다짐했다.
그럼에도 매번 나는 침묵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욕심, 효율, 완벽을 버려야
비로소 이 여행을 즐길 수 있음을 직감한다.
엉망진창 여행이 되길 기대한다.
공연이 시작된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음악을 즐긴다.
2024.03.10.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