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알고 나니 더 따뜻해지는 사랑

by 옥고미니

남편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단다. 그것도 토요일 5시에. 요즘 몸이며 마음이며 힘든 시기이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뿐이라 흔쾌히 다녀오라 했다. 내 눈치에 회식 이야기도 꺼내기 어려워했던 사람이 토요일 저녁 약속을 다녀오겠다고 말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주말의 오후를 보내고는 왜 나갈 준비 안 하고 있냐 물으니, 애들 먹일 저녁 도시락을 만들고 가겠단다. 참치 주먹밥에 김을 솔솔 올려 도시락 두 통을 만들고는, 활짝 웃으며 다녀오겠다고 나서는 남편이다. 저녁 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열어보니, 여섯 살 딸아이와 아직 입이 작은 세 살 아들아이의 도시락을 또 다르게 만들어두었다. 딸의 입 크기에 맞춘 주먹밥과, 아들이 한 입에 쏙 넣기 좋게 만든 아기 주먹밥까지. 이런 디테일한 배려라니. ‘세심함’이라는 단어조차 아까울 정도로,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도시락이었다.

남편표 도시락

나는 남편을 참 존경한다. 그의 배려와 사랑에는 언제나 섬세한 관찰과 받는 사람을 향한 깊은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다정도 지능’이라는 말이 있다면, 남편은 그 말 자체를 사전으로 옮겨놓은 사람 같다. 여러모로 똑똑한 남편은 따뜻함 속에 현명함이 자연스레 스며 있고, 나는 그런 남편을 닮고 싶어 부단히 노력하지만 아직 멀었다고 느낀다. 언젠가 나도, 받는 사람이 뒤늦게라도 ‘아,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했구나’ 하고 느낄 만큼 깊고 따뜻한 배려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남편의 도시락처럼, 말없이 전해지는 사랑을.

어느 날, 남편 없이 혼자 운전해야 할 일이 있어 주차장에 내려갔다. 그런데 운전석보다 조수석 쪽 자리가 유난히 넓어 보였다. ‘주차를 잘못했나?’ 싶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남편이 주차할 때마다 묻던 말이 떠올랐다. “내리기에 안 좁겠어?” 주차장이 좁아서도, 남편의 운전이 미숙해서도 아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내리길 바라는 마음에 늘 자신의 편의를 조금씩 포기하고 조용히 치우쳐 주차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또 그의 사랑을 깨달았다. 티 나지 않게, 과하지 않게, 하지만 늘 한 발 뒤에서 누구보다 깊게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 잔잔한 따뜻함이 오늘도 나를 울린다.

사실 나도 힘들 때가 있다. 여러 역할을 하느라 벅찰 때가 있고, 숨 한번 크게 쉬고 싶은 날도 있다. 그런데 나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남편을 보며 내 벅참은 잠시 뒤로 미뤄둘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냥 “잘 다녀와”가 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왜 이렇게 아플까, 왜 혼자 끙끙 앓을까. 답답해서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리고는 너무 건강하게, 너무 잘 버티고 있는 나를 보며 ‘왜 나는 아프지도 않고 이 많은 걸 다 짊어지고 살지…’ 싶은 순간도 있다.

그래도 나는 남편의 도시락을 잊지 않기로 한다. 약속 나가기 전 아이들과 나를 위해 만들어 놓고 간 도시락처럼, 주차장의 작은 공간처럼, 늘 한 발 뒤에서 깊이 있게 배려하고 있는 그의 마음을 잊지 않기로 한다.

가끔은 내가 벅차서 남편의 모습이 미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마음보다 감사함을 조금 더 크게 품어보려 한다. 남편이 전해준 조용한 사랑을 나도 언젠가 더 잘 건넬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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