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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혁 Nov 02. 2022

그럴 수 있지

좋아하는 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럴 수 있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생긴 기준이 다른 이유라서 일까요. 살다 보니 이 정도는 '그럴 수 있지.' 하며 넘어가는 경우에도, 옆에서는 화를 내는 걸 보며 '그럴 수 있지'에도 각자 허용할 수 있는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 있지' 기준이 꽤 높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저도 가끔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만나곤 합니다. 특정해서 말하긴 어렵지만, 그럴 때면 너무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두드리며 심호흡을 세 번 정도 하기도 하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기도, 마지막엔 '허허' 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해요.


하기야 각자가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른 것뿐이지. 부처도 아닌 제가 어떻게 모든 상황에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요. 머리로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는 결국 감정을 겉으로 표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하는 것은 소리를 지른다거나, 감정에 앞서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간혹 자기 방어의 목적으로 상처받았다고 똑같이 되돌려 주겠다는 마음에,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본인이 상처받고 싶지 않다면 주지도 말아야 합니다. 상처는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니까요.


공자가 아닐지라도 자기감정을 잘 컨트롤할 줄 알아야 비로소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끓어오르는 화를 쌓아두지 않고 좋은 방법으로 표출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단 말이겠죠. 감정이 태도가 되는 사람조차도, 감정이 태도가 되는 사람을 곁에 두려 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그림으로 잘 표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붓을 잡고 연습을 하듯, 불쑥 튀어 오르는 감정을 조절하고, 잘 표현하는 데도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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