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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혁 Oct 20. 2023

그럴 용기가 있을까

열세 번째 이야기

3주 동안 이 많은 사람들이랑 같이 다닌다니, 끝나긴 할까 싶었던 아프리카 트럭킹이 끝났다.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아프리카 여행에 대해 물어본다면 비용이 조금 들더라고 아프리카 트럭킹을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를 제외하곤 전부 영어권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투어가 전부 영어로 진행되다 보니 설명이 끝나면 따로 찾아가서 두 번 세 번 다시 물어보는 경우가 허다했고, 대충 알아들었다고 넘어갔던 경우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사람들에게 불편을 줬던 적도 있었다.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해 주고 괜찮다며 격려해 줬다.


마지막 날, 헤어지는 게 아쉬우니 다 같이 리조트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다는 말에 형님은 아침 일찍부터 핸드폰 메모장에 이런저런 말들을 적고 계셨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모두 함께한 마지막을 기념하고 싶어서 한국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며, 영어권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할 노래에 대한 영어 설명을 적고 계신 거였다. 그렇게 저녁 식사 시간이 됐고 다들 하나 둘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짐바브웨 원주민이 나타나더니 30분가량 공연을 했다. 다 같이 참여해서 춤추고 노는 분위기에 너도 나도 나가서 춤을 추고 놀았는데, 그렇게 한껏 달궈진 분위기에도 형님은 여전히 홀로 나가 맥주 마이크를 잡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원주민 공연단이 전부 나가고, 저녁 식사도 끝나 갈 무렵 형님은 앞에 나가셔서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시며 노래를 하셨고, 우리 멤버들 외 다른 투어사 사람들도 함께 즐기며 분위기를 즐겼다.


투어를 하는 3주 동안 우리를 아니꼽게 보던 몇 명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던 걸까, 노래가 중반부를 지나갈 때쯤 가장 즐거워하며 영상을 찍었던 나는 사실 형님이 나가시기 직전까지 형님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 같이 즐길 수 있었던 원주민 공연이 너무 재밌기도 했었고, 영어권 친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노래를 혼자 나가서 부르면 분위기가 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 예상과는 달리 형님은 모두의 박수갈채 사이에서 노래를 하셨고, 노래가 끝나고는 그동안 덕분에 너무 즐거웠다며 자연스레 트럭킹을 마무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너도나도 서로를 안아주며 마지막 인사를 하기 바빴다.


만약 나였으면 어땠을까. 작년 7월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2주간 휴가를 갔을 때 친구들과 가평에 있는 한 펜션으로 여행을 갔던 기억이 났다. 나는 노래방이 없는 멕시코에서 막 도착한 탓에 오랜만에 노래가 부르고 싶었고, 마침 사장님이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은 불러도 된다며 기계를 꺼내두셨다. 나는 고기를 굽고 있던 탓에 다 먹고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놀자고 얘기했는데 다른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는 걸 의식한 친구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혼자라도 나가서 한 곡 불러 봐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냥 안 하면 안 되냐는 친구의 말에 결국 끝이 났다. 바로 옆 펜션에서는 내가 있는 곳까지 노랫소리가 들릴 정도로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었는데, 나는 그 분위기가 부러웠다.


마찬가지로 내가 같이 노래를 준비했더라면 나는 원주민 공연에 압도되어 없던 일로 넘어갔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남들보다 조금 튀거나 나서는 사람을 보면 금방 관종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며 손가락질하는 사회가 싫다고 말하면서, 결국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꼴이었다. 형님이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잠시나마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부족한 영어 실력에도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증명해 보인 형님이 멋있었다.


직접 보고 피부로 느낀 만큼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내게도 그럴 용기가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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