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혁 Oct 20. 2023

내가 선택한 인생이지만 가끔은

열네 번째 이야기

마사이족이 산다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지도 보고 찾아온 롱기도 마을. 외국인이라고는 나 혼자뿐인 이곳에 도착한 당일 만난 마사이족 족장의 세 번째 부인인 라헬리 엄마. 하필이면 내가 방문한 그날이 옆 마사이 마을 족장의 5번째 부인을 들인 결혼식 세레머니가 있는 날이라고. 혼자라면 절대 찾아오지 못했을 로컬 마사이 부족. 워낙에 키가 큰 부족인데다가 남자는 각자의 벨트에 팔뚝만 한 칼을 하나씩 차고 있다. 라헬리 같이 마을에 방문해서 그런 건지 원래도 순한 사람들인 건지 마을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족장이 나를 맞이해줬다. 어서 오라며, 이 안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도 되고 마음껏 축제를 즐기고 가라고. 마음이 한결 놓였다. 웬 외국인이 마을을 휘젓고 다니니 멀리서 놀란 듯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몇몇 사람은 놀란 듯 눈살을 찌푸리는 듯 보인다. 처음에는 나를 그런 시선으로 쳐다보는 그들이 무서웠지만 내 발로 들어온 것을 누굴 탓하겠는가. 한 달 남짓 탄자니아에 있으면서 배운 스와힐리어로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잠보! 하바리!” 어색한 스와힐리어로 먼저 다가가 인사하는 순간 그들은 흰 치아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손을 맞잡는 순간 서로의 경계심은 많이 누그러졌다. 그렇게 몇 시간을 그들과 어울려 지냈다.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세레모니에 껴서 같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세레모니가 막바지로 흐르는지 그들은 조금 더 둥글게 원을 만들더니 한두 명씩 나와서 점프를 하기 시작한다. 마사이족은 높게 점프를 하기로 유명하다더니, 제자리 점프를 정말 높게도 한다. 어느새 친해진 마사이족 친구에게 나도 저기에 들어가서 점프해 봐도 되냐고 물어봤다. 아직 나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내가 들어가는 순간 분위기가 안 좋아질까 걱정도 했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뛰는 순서는 따로 없었고 뛰고 싶을 때마다 나와서 뛰면 되는 거라는데, 막상 뛰어보려니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본 걸까. 옆에 있는 친구는 괜찮다며 자기가 들고 있는 막대기를 내 손에 쥐여줬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그들과 함께 뛰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뛰었다. 높게 더 높게. 잘 뛰는 그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높게 그들 사이로 들어가 뛰었다. 춤추고 노래하는 그들 사이에서 이방인인 내가 함께 점프를 하고 있다니. 나는 그렇게 두어 번 점프를 더 하고는 옆으로 빠져나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정말, 정말 이상했다. 어떻게 사는지 평생 알지도, 궁금하지 않던 아프리카의 부족을 대뜸 찾아가 그들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한참 축제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됐다는 말. 아쉬움을 뒤로하고 함께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에게 가볍게 손 인사를 하며 웃음으로 아쉬움을 감춘다. 그들은 언제든 또 놀러 오라며 떠나는 내 손을 잡아주며 배웅해 준다. 터벅터벅 두 발로 마을을 걸어 나오는데 마치 잠에서 막 깬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치 좋은 꿈을 꾸다 일어난 듯한, 조금은 몽롱한 기분.


어느새 여행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더라. 시작 전엔 3개월 만에 도망치면 어쩌나 했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내 머릿속은 여전히 여행하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여전히 세상은 넓고 우물은 높다. 남은 8개월간 얼마나 더 보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하루하루를 바쁜 행복으로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전 13화 그럴 용기가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