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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타이 Mar 18. 2024

러셀 로버츠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을 읽고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부제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이다. 우리는 인식하지 못할 때조차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내가 자주 했던 선택은 현재 모양새 그대로, 별다른 대안을 탐험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난 위기 상황을 제외하고는 현실에 만족하는 편이다. 그래서 선택을 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지만 (어학실력도 마땅치 않고, 이렇다 할 연줄도 없기에) 그냥 한국에서 일하는 것, 이 직장이 최선이 아닌 것 같지만 (다른 직장을 알아볼 기운은 없어서) 그냥 머물렀던 것, 그 남자는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지만 (달리 만나볼 다른 남자도 없기 때문에) 그냥 그 남자를 만나는 것…


행동하고 탐험하고 답을 얻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늘 여기 아닌 어딘가를 꿈꾸었다. 현실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늘 불만족스러웠다.


“확실성을 향한 욕구는 마음을 가장 크게 병들게 한다” 
로버트 그림, <마스터리의 법칙>


내가 답 없는 문제 취급했던 것들은 정말 답 없는 문제였을까? 삶은 답 없는 문제들로 가득한데, 정작 답 있는 문제들까지 답을 구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나?  대체 답 없는 문제는 무엇인가.


아이를 가질까, 결혼할까?… 러셀 로버츠는 이런 문제들을 ‘답이 없는 문제’라고 부른다. 그것이 답이었는지 끝까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선택은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고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결정한다. 측정할 수도 없고, 모든 이들에게 같은 답도 아닌, 어제는 맞았으나 오늘은 틀린 문제들, 과거엔 운명이라 불렀으나 이제는 선택이 된 것들.


경제학자인 러셀 로버츠는 사는 내내 어떻게 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적의 결과를 얻는가 같은 공리를 위한 과학 문제에 골몰했을 것으로 보이나, 살다 보니 과학으로 안 되는 답 없는 문제들에 대해선 과학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었다. 인류의 기원을 밝혀낸 다윈 같은 사람도 결혼할까 말까 리스트 대신 자신의 감정 반응에 따라 ‘결혼한다’의 선택을 했다. 하나도 과학적이지 않은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 결정 전에 비용-혜택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매우 권장할만하다고 한다. 합리적으로 계산해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정말로 추구하는 것’이 무언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자신이 쓴 리스트에 어느덧 자연스럽게 감정 반응을 하고 있는 자신과 만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날그날의 쾌락과 고통 그 이상의 ‘목적’을 원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옳은 일을 하고 싶다. 나 자신보다 큰 무엇에 속하길 원한다. 또한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인생을 잘 살아내고 인간으로 성장하고 싶다.


잘 산 인생은 단순히 즐거운 인생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꽃피우는 삶을 열망한다. 나를 충만하게 하고 나답게 느끼게 해주는 삶의 결은 무엇일까.


인간의 성장은 쾌락과 목적 사이에서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가 믿고 있는 무언가가 진리가 아니란 걸 깨닫기도 한다. 종교나 정치가 가진 호소력의 핵심은 소속감이다. 나보다 더 큰 어떤 것, 내가 의무라고 믿는 것,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 어떤 것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공리적 효과보다 인간적 성장을 우선시해 결정한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자아감을 바꾸고, 이 바뀐 자아감은 남은 인생에 어떤 방식으로든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내러티브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매일 타인과 어떻게 지낼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사실 친구, 동료, 부모로서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정의한다는 것을 간과한다.


상대에게 반응한 줄 알았으나, 알고 보면 무의식 중에 나오는 반응들은 나의 두려움이나 욕망, 욕구의 영향일 때가 많다. 자동 조종 모드와 같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희생자, 영웅, 루저 등으로 쓴 나의 내러티브를 깨고 나올 수 있을까.


“인간이란 어머니가 낳아 주신 날 단 한 번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생이 지속되는 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가브리엔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번갈아 가며 주고받는 독백이 아닌, 계획하지 않고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험이 되는 진짜 대화처럼, 우리는 살아가며 ‘진짜 인생’을 발견할 수도 있다. 


계약으로 가득 찬 관계가 아닌 서약으로 함께하는 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진심에서 우러난 약속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내 몫을 챙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타인이 믿을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고 싶어서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인간이다.


어떤 경우에도, 내 원칙을 첫 번째로 두어야 한다.

고민과 번뇌에 쓰는 시간이 줄어들어 인생이 간결해진다. 또한 나 자신을 속이지 못하게 막아 준다. 정체성과 자아감을 유지하는데 유용하다. 내 양심의 가격은 얼마일까 따져볼 필요가 없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라. 결국 경험은 선택권을 준다. 나에게 맞지 않는 걸 알았다면 아무 생각 없이 그 일을 계속하면 안 된다. 인생은 짧다. 앨런 손더스의 말처럼 “인생이란 우리가 열심히 계획을 세우는 동안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 내가 옳은 선택을 하게 될 거라 여겨지진 않으나, 적어도 이게 맞는 건가 불안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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