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타이 Apr 22. 2024

평생 생일 한 번 챙겨준 적 없는 아빠

삼신할매가 너무 했네. 왜 이 집으로 보냈수?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생신이기 때문이다. 같이 살 때의 추억보다 파탄난 가정사의 유책임자로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남아있기에 그곳이 어디였든 반가운 걸음이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울진은 해도 해도 너무 멀다. 좋은 아버지까진 모르겠고, 평범한 아버지 정도만 되어도 찾아가기 쉽지 않을 거다.


내가 태어나기 전엔 행정구역상 강원도였다는 그곳은 이제 경상북도다. 그렇지만 강원도에서도 경상북도에서도 먼 그곳은 산지인데 외딴섬 저리 가라다. 우리는 늘 차를 타고 이동하며 마주치는 이정표를 보며 "경북 영주만 되었어도..", "제천만 되었어도..", "울진 시내만 되었어도..."하고 바라게 되는 거다. 영주는 2시간 반 거리, 울진은 4시간 반 거리다. 그리고 아빠 집은 5시간 거리다. 안 막힐 때 얘기다.


이혼하고 단출해진 가정이라 챙기는 이는 나와 내 동생 내외뿐인데 대체 누구 좋으라고 여전히 음력 생일인가. 와이프와의 관계, 승진 심사, 각종 회사일 등 이런저런 핑계로 이런 가정 행사 때마다 배 째고 있는 남동생쪽으로 옮겨 탈까 고민된다. 하지만 오지에 홀로 남아 땅과 씨름하고 있을 몸 불편한 노인네가 가엽지 않은 건 아니다. 왜 내 부모는 해준 것도 없이 불쌍하기까지 한가. 가난을 물려준 조부모도 나쁘다. 툴툴거리며 여행가방을 쌌다. 


여동생도 툴툴거림은 매한가지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우리 제부, 이서방만 빙긋이 웃으며 "울진 좋아" 단톡방에 남길뿐이다. 여동생의 불만은 대체로 울진에서 겪게 될 노동에 대한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하는 나도 알고는 있다. 그녀가 안 하면 내 밥은 누가 먹이겠나.


사실이 그랬다. 여동생은 조용히 새벽이슬을 맞으며 아빠와 고사리를 꺾고, 집에서 손수 만들어서 포장해 온 밑반찬 대여섯 가지에 어울릴만한 일품요리나 국물을 준비했다. 제부는 알아서 척척 조수 역할을 했다. 요리라고는 집에서도 거의 하지 않는 슈퍼 도시인인 나는 그저 장 볼 때 지갑을 열고, 수저를 놓고, 설거지를 할 뿐이다. 뭐 도움은 안 되겠지만, 속도 없이 국이 싱겁다고 하여 여동생의 부아를 지르는 아버지 보단 나은 것 같다.


그렇다. 이 무리의 우두머리는 여동생이다. 그러니 어른 노릇하는 동생 앞에서 섣불리 불만을 토로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디 사람이 그러한가. 몫의 고통이 있는 법이다. 고통은... 멀다, 주말에 쉬고 싶다, 나는 아침 일찍 못 일어나겠다, 얼마 전에 허리 다쳤다, 바닥에서 자기 싫어, 몰라 싫어 싫어 싫어. 등등이 있겠다. 


어쨌거나 중간중간 맥주와 사케, 대중탕을 곁들여가며 2박 3일의 여정이 끝났다. 여동생 내외가 따로 주문한 레몬케이크에는 아빠 이름과 만수무강이 써져 있고, 기억하기 힘든 아버지의 생신은 고사리를 꺾는 계절과 맞닿아 있어, 우리는 다 같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고사리를 꺾었다. 동생 내외는 다정하게 주방 일을 같이 한다. 시골개를 산책시켰고, 아빠의 손글씨를 보았다. 우리 아빠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는데 글씨를 너무 예쁘게 잘 썼다. 대학까지 나오고 몸도 멀쩡한 우리 삼 남매보다 훨씬 잘 쓴다.



"아빠. 평생 동안 내 생일 한 번도 안 챙겨줬으니까 나 손글씨 편지 한번 써줘"

아빠는 아마도 까먹고 안 써주겠지만, 아빠의 손글씨를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가기 전부터 나의 생떼와 여동생이 단호함이 부딪혀서 아주 일촉즉발이었던 울진행은 싱겁게 끝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 같은 오후, 개 같은 밤의 꿈을 생각하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