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자기 확신에 관하여
지금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데, 너는 후회하는 날이 올 거야.
대학을 졸업하고 신입사원 딱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퇴사를 결정하고 상사에게 보고를 했다. 회사에 내가 퇴사한다는 소식은 급속도로 퍼졌고, 퇴사까지 3주가 남은 기간 동안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 같이 점심을 먹는 자리가 있어서 갔는데, 옆 부서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퇴사한다며? 지금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데. 나가면 밖은 추워~ 나중에 후회하는 날이 올 거야." 나를 꽤 예뻐하는 팀장님이었고 회사에서 적응하도록 많이 도와주던 분이었다. 그분의 말이 악의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미 결정을 내리고 차가운 세상으로 나가려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얼음장 같은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3주 뒤 퇴사를 했고 정말로 그 팀장님의 말처럼 나의 선택에 후회하는 순간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호주에 가기로 결심을 했다. 호주행은 나에게 결코 작지 않은 인생의 결정이었다. 어쩌면 호주를 가는 것이 한국 생활에 지쳐 도피하려는 마음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호주에 간다고 했지만 '실패해서 돌아오면 어떡하지?', '나이만 들고 그때의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마음이 컸다. 내 마음에 확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용기도 없었다. 또 하나 우려했던 부분은 귀가 얇은 내가 주변 사람들의 말에 흔들릴까 바였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한국을 떠나기 2주 전에 호주에 간다고 통보를 하는 것이었다. "나 곧 호주 가니까 당장 만나자." 한국에서도 여러 곳에서 살았던 나는 떠나기까지 2주를 남기고 서울, 대구, 부산을 찍으며 사람들을 만났다. 내 결정에 가타부타하는 게 두려워 몇몇 친구들에게는 일방적인 카톡으로 통보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만큼 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걱정 어린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강한 마음은 더욱이 없었다.
아직 굶어 죽기엔 이르지 않아요?
호주에 처음 오고 세컨드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 여름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따면서 한국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활에 크게 고생을 했다. 그러나 세컨드 비자를 위한 88일을 거의 다 채워갈 무렵, 내 몸은 농장에 완벽하게 적응한 상태였다. 농장에서는 내가 고생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 좋았고, 함께 지내는 친구들도 너무 좋았다. "나는 딱 88일만 채우고 시티로 갈 거야"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시티로 나가서 일을 구할 생각을 하니 막연하게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너무 편한데 그냥 여기 있을까?'라는 마음이 80일쯤부터 계속 들기 시작했다. 머리는 시티로 가라고 말하는데 마음은 이곳이 너무 편안했다. 결국 긴 고민 끝에 기존에 생각했던 시티로 이동해서 카페 일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고, 다니던 농장에 그만두겠다고 노티스를 주었다.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내 선택에 크게 우려했다. 시티에서 지내다가 농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시티에 지금 일거리가 없어요.", "아직 굶어 죽기엔 이르지 않아요?"라고 농담 섞인 말들을 해주었다. 그들이 언급한 염려를 고스란히 마음에 담은 채 정확히 90일을 채우고 농장을 떠났다.
사실 이러한 주변 사람들의 말은 호주 생활을 하면서 큰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반복됐다. 브리즈번에서 캔버라로 이동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재미없는 캔버라를 왜 가요?", "거기는 아무것도 없어서 가면 금방 돌아올걸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동요가 되지 않는 말들일 수 있지만 나처럼 확신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큰 염려로 다가왔다. 한국에서 회사를 퇴사할 때처럼 '그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들까 봐 무서운 것도 있었다.
처음 브리즈번에서 캔버라로 온 이유를 크게 꼽자면 두 가지였다. 좀 더 영어를 쓰는 환경과 바리스타로 일 할 수 있는 환경. 내가 생각하기에 브리즈번은 한국인들이 많아서 한국인들과 어울려 놀기 좋은 환경이었고, 그만큼 영어실력이 더디게 늘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경력한 줄 없는 내가 대도시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
일주일 정도 뒤면 캔버라에 온 지 3년째가 되는 날이다. 농장에서 다른 한국인이 대신 통역을 해줄 정도로 영어가 서툴렀는데, 지금의 나는 영어로 내 의사표현 정도는 할 줄 아는 실력이 되었다. 그리고 바쁜 카페에서 스스로 커피를 다룰 줄 아는 바리스타가 되었다. 그 중 무엇보다 가장 크게 얻은 게 있다면 '자기 확신'이 생겼다. 내가 하는 선택이 그렇게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의 말들이 다 맞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이런 결정과 도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2017.10.25 일기
워홀에서 꼭 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수동적인 성격에서 오는 소심함이나 의존적인 모습을 고쳐보고 싶다. 또 나는 힘들면 걱정과 우울감에 빠져 도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양한 상황을 마주할 때 직접 해내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싶다. 이러한 자신감은 나에게 강인함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호주에 오기 전에 썼던 일기를 다시 봤다. 20대의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30대가 되어서야 조금은 성장한 것 같다. 우리 인생에 정답이란 것은 없었다. 누구의 말이 맞고 잘못된 것도 없었다. 그동안의 나는 선택의 두 갈림길에서 좋은 결정을 하기 위해 충실하게 고민했고, 나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선택을 해왔다. 생각해보니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이기에 내 결정을 믿어줄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비로소야 내게 가장 필요했던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호주 이민이라는 큰 결정을 했고 아직 그 과정 중에 있다. 분명 앞으로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과 힘든 순간들이 오겠지만, 적어도 미래에는 내 선택에 조금 더 확신을 가진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