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청 드레싱

오늘을 견디게 해 주는 작은 맛

by east river

첫 눈이 하얗게 내리는 일요일 밤,,

'고요하고 설레이는 이 밤에 온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유자차 한 모금'

이 한 문장에 벌써 유자향이 코 끝에서 맴돈다.


겨울밤 처럼 차가운 셀러드에도 유자청 드레싱 한 스푼이면 향긋 상큼 그리고 따뜻해진다.

오늘은 이 따뜻한 드레싱을 얹은 책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런데요 선생님, 강아지가 산책하다 똥 싸면 주인이 치워야죠.

이렇게 그냥 두고 가면 안되지 않아요?"


'돌이네 흰둥이가 똥을 눴어요.

골목길 담 밑 구석 쪽이에요.

흰둥이는 조그만 강아지니까

강아지똥이에요.'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강아지똥'처럼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이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자가 핵심인데, 요즘은, 왜 배변 봉투를 안챙겼냐, 목줄을 안했냐며 강아지 주인에게 따지는 책이 되었다.

그러나 10년전만 해도 시골 동네 작은 강아지들에겐 목줄 없이 다니는 낭만이 있었다.

이 책을 읽을 흰둥이처럼 귀여운 아이들에게 작은 낭만이라도 알려주고 싶다.


그 보잘것 없는 개똥 덕분에 민들레 꽃이 활~짝 필 수 있었다고. 작고 더럽지만, 배변 봉투를 챙기지 못한 주인의 잘못이 있긴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린 노오란 작은 꽃을 볼 수 있는 거라고,,




"이 과자가 행운일지 불행일지는 손님 하기 나름이지요."


우리 학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은 바로 히로시마 레이코의 <전천당>

수업 후 부모님을 기다리며 심심할까봐 사 놓은 책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아직도 인기가 많은 책이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어느날, 뭐가 재미있길래 빠져서 볼까 싶어 1권을 펼쳤다가 단숨이 10권을 읽어 내려갔다. 와, 어른인 내가 읽어도 몰입해서 읽게 되는 이상한 과자 가게였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재와, 욕심을 많이 부리면 벌을 받는 다는 권선징악의 교훈,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니 빠져들 수 밖에,,


행운의 과자를 손에 넣었어도 자신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말은 상당히 달라진다.

쓰고 신 맛이 강한 유자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쓰고 셔서 버릴 수도 있고, 상큼한 음식이 될 수 도 있는것 처럼, 우리 손에 굴러 들어온 작은 행운들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이 책은 '나 라면~' 이란 질문을 품고 읽으면 더 재미있다.

내게 이런 쿠키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사용했을까?

이렇게 했을 때 결말은 어떨까? 그렇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 권, 한 권... 결국 20권까지 단숨에 읽게 된다. 그리고 다음 화가 나오길 기다리게 되는 이상한 책이다.




우리학원 귀여움을 담당하는 중학생 지윤이,,

오늘은 책을 읽다 말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다.

'응? 오늘 책은 비문학책인데? 경제 책이 그리 감동적인가?'


조용히 휴지를 가져다 주고 진정 될 때 까지 기다렸다.

다행이 마막 타임이라 지윤이가 스스로 말 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국어 시간에 자기가 읽은 책이 나왔길래 아는 척 했다가 친구들에게 '잘난 척'하는 아이로 찍혔다는 것이다.

에공,,


사실 난 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왕따였다.

그땐 왕따라는 단어가 없었지만, 친구들 무리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시기가 있었다.

나를 힐끔 쳐다보면 자기들끼리 뭐라 수근대는 모습,

아무리 안보려고, 신경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 마음이 아파왔다.

착하게도 굴어보고, 아이들이 요구하는거 다 들어도 줘보고, 불쌍한 표정도 지어봤지만, 그럴수록 더 차가운 아이들의 모습에 매일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방법은, 없.었.다.

학년이 바뀌고나서야 그 시기가 지나갔다. 아이들도 그 사이 성숙해졌고, 또래 집단의 구성원도 바뀌었다.

그 시절, 나를 따돌렸던 친구 중 한명과는 아직도 연락하며 잘 지낸다. 그 친구도 독서학원을 운영하게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얼마 전, 그 친구와 황영미 작가의 <체리 새우:비밀글입니다> 책 이야기를 나누다 슬며시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얼굴을 붉히며 미안해 하는 친구,,

그때 우린 어렸고, 미숙했으며, 또래 집단에 속하고 싶은 강한 충동으로 어쩔수 없었다고 한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지윤이에게 들려주며, 이 책을 건냈다.

너의 잘못이나 부족함이 아니라고,,, 오히려 이 시기에 '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며 '나'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길 원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으로 채워 가길 권면했다.

이 말도 귀에 안 들리겠지만, 우리 지윤이가 이 시간을 눈물로만 채우지 않기를,, 이 시기가 오히려 거름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너무나 시렸던 그 시절이 생각나니 오늘은 퇴근길에 따뜻한 유자차 한잔 해야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틀린게 아니라,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감정일 뿐이야."


백세희 작가의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에 나오는 말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너무 밋밋해서 제본 한 책인줄 알았다. 제목도 이상하고,,,

그런데 이 제목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고,, 왠지 내 마음을 콕 짚어 내는 것 같았다.


학원 운영도 해야 하고, 두 아이도 키워야 하고, 공부도 잘 했으면 좋겠으니 학습도 봐 줘야 하고, 아내로써, 딸로써, 며느리로의 역할도 감당해야 하고,, 하루하루가 너무 버겁고 무겁다.

가끔은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꼬깃꼬깃 숨겨둔 젤리를 내 손에 쥐어 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뭐라고,, 자기가 먹고 픈거 참아가며 내 손에 쥐어 주는 걸까?


40대 중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역할이 주어지는 시기다.

모든 역할을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젊은 작가의 글이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래,, 이 감정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감정일 뿐이야. 이 버거움 또한 그럴 것이야,,


오늘은 이 책의 주인공과 만나 떡볶이 한 접시에 라면 사리 하나 올려 놓고 호로록 먹고 싶다.

하지만,, 작가님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더이상 그의 새로운 글이 발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깊은 여운이 남는다.


가시기 전에 떡볶이는 드셨을려나?




나에겐 중학생 딸이 있다.

가끔 이 중등딸과 카톡을 주고 받으며, 말로는 못하는 이야기를 건낼 때가 있다.

아이는 낯선 엄마의 모습에 당황하곤 한다.

엄마는 늘 어른이고, 크고, 성숙할꺼라 생각 했나보다. 나 또한 우리 엄마는 그런 분인줄 알았으니 말이다.


며칠 전 학부모님과 상담하다 작은 말실수를 한 적이 있다. 어디 말하기도 부끄럽고, 그냥 삭히자니 잘 풀리지 않아 답답했다. 그래서 딸에게 카톡을 보냈다.


"으악, 나 **이 엄마께 이런 말을 했어ㅠ 넘 창피한데,, 말 할때가 여기 밖에 없어ㅜ"

"헐....."

"야! 엄마한테 헐이 뭐냐?"

"헐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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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딸에게 이런 카톡이 왔다.

"엄마, 저 오늘 발표 시간에 아무말 대잔치 했어요. 하,,, 망했어요."

"ㅋㅋㅋㅋㅋ 꼬시다~"

"엄마! 딸한테 꼬시다가 뭐에요?!!!"

"헐 보단 낫지 모"


이후 우리는 가끔 카톡으로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며 날려 보낸다.

우리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만, 때로는 서로 너무 다른 세계에서 헤매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말해준다.

' 세계를 건너도, 진심은 닿을 수 있다'고.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나의 모습도, 서로에게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쓰고 신 유자가 설탕을 만나 세상 향긋한 유자청이 된다.

우리의 쓴 일상도 향긋한 책을 만난다면 따뜻한 여운이 남은 유자청 같지 않을까?

오늘도 독서맛집의 비밀 소스로 삶이 더욱 풍성해 지길 바라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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