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스리라차 소스

사회비판

by east river

"비상개엄을 선포합니다"


이 한 마디에 대한민국은 둘로 나뉘었다.

2024.12.3. 우린 남북으로 나뉜것도 모자라 좌파와 우파로 확 나뉘었다.

사람이 모두 다르게 생겼듯, 생각과 사상도 모두 다르다.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그르다고 말 하기 전에,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와 같은 점은 무엇인지, 다른 점은 무엇인지, 그래서 무엇을 비판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사회비판은 진영을 나누거나 시비를 가리려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인정하며, 다르지만 함께 하기 위해 화끈한 스리라차 소스를 뿌려보려 한다.




"선생님? 먹방 찍으세요?"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이다. 그래서 '읽어라 쌤'의 또다른 별명은 '먹보 쌤'이다.

배가 너무 고파서 빵 한 조각 집어 먹었는데 맛있어보였나 보다.

"선생님도 먹방 한번 찍어보세요! 조회수 잘 나올것 같아요!"

그래서 먹방 유튜브를 찾아 보았다.

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그리고 저렇게 많은 음식이 순식간에 입으로 사라지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창의 기름이 물처럼 꿀꺽 삼켜지는 모습을 보며

'궂이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저 분의 건강은 괜찮을까?' 염려스러웠다.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친구들과 염연화 작가님의 <떡볶이 먹방 소동> 책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인기가 많으면 좋을까? 인기가 많으면 무엇이 좋을까? 인기 없어도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기 많은 사람의 삶은 행복할까?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진짜일까?


요즘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돈 많은 백수'라고 말한다.

돈 많은 백수가 되려면 일단 돈이 많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면

꼭 나오는 직업이 바로 '유튜버'다.

화면 속에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삶을 즐기는 것 같고, 즐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보여지는 그대로일까?

이 책에서는 인터넷 세상에서의 '좋아요' 때문에 거짓말하고, 친구랑 멀어지고, 결국 스스로 힘들어지게 된다. 진짜 내 모습보다 화면 속 가짜 모습이 더 중요해진 이상한 세상.

아이들도 한번 쯤 '진짜 세상'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최근 농촌 유학 지정학교로 선정 된 작은 시골학교에 독서토론 수업을 나가고 있다.

8명의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과 김지인 작가님의 '몬스터 차일드'책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어린 아이들의 몸이 괴물처럼 변하는 유전병인 'MCS 증후군'에 대한 사회적 시각과 차별에 대해 토론을 했다.

몬스터 차일드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무엇이었을까?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몬스터라는 사실’ 자체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일까?


몇해 전, 코로나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코로나 초기, 코로나 확진이 되면 보건소에서 주변에 알리는 알림이 있었다.

코로나에 걸린게 마치 나이 부주의로 인한 내 탓이었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는 바이러스 덩어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때 확진자를 힘들게 했던 것은 코로나로 인한 아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확진자를 바이러스 덩어리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때문이었을까?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몬스터 차일드인가? 사람들인가?


무거운 토론 주제였지만, 마음 따뜻한 친구들은 우리 학교에 몬스터 차일드가 전학 오더라도 무서워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겠다고 했다. 사실 이미 이 학교엔 타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거나 적응하지 못해서 부득이 전학오는 학생들이 있었다. 마음이 다쳐서 전학 온 학생들은 이 학교 친구들 덕분에 우정이라는 것을 뒤늦게 배워가고 있었다.

스리라차의 매운 맛 뒤의 노곤함 같은 것일까? 긴장했던 내 마음도 노곤하게 풀려가고 있다.




1980년의 개엄과 2024년의 개엄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보'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은 철저히 은폐되고 왜곡 되었다.

그래서 수 많은 죽음을 우린 '광주 일원, 무장 폭도들의 난동'으로 알았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저 한 지역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지나갈 뻔 했다.

하지만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리고 2024년 대한민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한 소년이 돌아왔다.

바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2024년 12월의 개엄은 5월 광주의 소년을 다시 소환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현장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국에 아니 세계에 노출되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헬기가 날아다니고, 헬기에서 군인들이 내리는 모습에 시민들은 놀랐다.

놀란 사람들은 12월의 칼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5월의 광주 소년이 되어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결국 죽은 자들의 도움을 받았고, 죽은 자들의 과거가 우리의 현재를 구했다."


2024년의 개엄에 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언론의 역할이 크게 바뀐 부분은 확실했다. 화끈한 변화임은 분명하다.




스리라차 소스 같은 매콤화끈한 책은

역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그리고 <1984>

사실 고등학교 때 이과였던 내겐 사회 과목이 너무 어려웠고,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세계사를 교과서가 아닌 교양으로 배운 터라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유명한 책도 누가 누굴 빗댄 건지 헷갈렸다. 차라리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동화작용의 화학식을 외우는 게 더 편하게 느껴졌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독서논술 선생님이라 어떻게든 이해해야 하기에 머리를 싸매곤 한다.

위에서 언론 통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 두 권의 책도 '정보'를 중심에 두고 읽으면 같은 맥락이 된다.


중등 이상의 아이들에게 동물농장을 먼저 읽게 한 후 인물 정리를 하고, 1984를 읽게 한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국가 체제에 대해 자세히 배우기에 정보와 더불어 이념을 섞으면 토론이 아주 매콤해진다. 거기에 한 주제를 더 얹어보자. 바로 '혁명의 역설'


존스 농장을 몰아낸 동물들과 자본주의를 부정한 1984의 당, 두 혁명은 모두 '평등하고 나은 세상'을 꿈꾸며 시작되. 혁명은 왜 늘 부패로 끝나는 걸까? 진짜 평등은 왜 늘 허상으로 끝나는 걸까?


앞으로의 세상을 이끌어 갈 우리 아이들과 함께, 정보, 이념, 그리고 혁명을 비교, 대조해 보면서 더 나은 세상을 꿈꿔본다.




12.3 개엄 이후, 연신 올라오는 자극적인 제목의 정치 뉴스에 온 신경이 집중 되었었다.

그러다 어느새 짧은 영상에 흠벅 절여져있게 되었다.


"오늘은 꼭 국어 문제집 한 챕터는 푼다."

다짐하며 식탁에 앉은 시간은 저녁 8시. 딱 3분만 쉬자며 휴대폰을 들었다. 유튜브 홈에 뜬 짧은 정치 뉴스 클립 하나. “딱 이것만 보고 문제집 펴야지.”

…그리고 새벽 1시.
핸드폰 배터리는 5%, 눈은 침침하고 머리는 텅 비어 있다. 뭐라도 본 것 같은데 남는 건 없다.

대체 나는 왜 또 이러고 앉았을까?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 은 말한다.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는 건 게을러서가 아니다.
우리의 주의력은 훔쳐지고 있다. 그것도 체계적으로, 아주 교묘하게.”


우린 성인이다. 절제력이 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실패하는 순간은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순간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우리가 주의력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훔쳐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건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설계 문제다.
우리의 시간을 빼앗기 위해,
우리를 클릭하게 하기 위해,
우리를 계속 ‘다음 영상’으로 몰아가기 위해 엄청난 두뇌들이 매일 코드를 짜고 있다.

이건 주의력에 대한 자본주의의 쿠데타다. 주의력은 곧 자유다. 우리가 집중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진짜로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존재일까? 그 질문 앞에서 이 책은 매운맛처럼 알싸하다.

그래서 단숨에 들이키긴 어렵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매콤한 스리라차처럼 중독적인 건, 유튜브 알고리즘만이 아니다.
그걸 파헤치는 이 책 역시 읽고 나면 자꾸 곱씹게 된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계속 머릿속을 톡톡 건드린다.

"그건 네 탓이 아니었어."

그 말 하나가, 오늘 밤 내게는 국어 문제집보다 더 절박한 위로였다.

나의 선택은 점점 줄어들고, 나를 유혹하는 자극은 늘어만 간다.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을까?

깊은 성찰의 찰나! 내 손가락은 나도 모르게 유튜브 알림을 향하고 있다.




알고리즘보다 똑똑해지는 건 쉽지 않지만, 한 권의 책은 여전히 그 흐름을 멈춰 세울 수 있다.
오늘도 마음의 중심을 지키기 위해, 나는 매콤한 스리라차를 책장 위에 꺼내든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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