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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샀다

250415 화요일 일기

by 피연

스마트폰, 아이패드 하다못해 이북리더기까지 있는 인간이 휴대용 미니 라디오를 사버렸다. 라디오, mp3, 녹음, 시계 및 알람 기능이 있는 그야말로 예전 시대 물건인데도 이걸 산 이유는 랜덤함이 그리워서였다. 내가 굳이 어플 찾아 들어가서 뭐 들을지를 고르고, 광고를 스킵하고, 그에 따라 개인화된 맞춤형 라디오가 추천되는 일이 지겨웠다.


좀 웃긴 얘긴데 내가 '좋아할 예정’이었던 분야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라디오를 즐겨 듣고 라디오 채널 취향이 있는 것이다. 자기 전에 틀어놓다가 잠에 들 무렵 간단히 끄고 숙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라디오’ 역할을 스마트폰에서 분리해 내서 한 놈한테 위임하고 싶었달까.


솔직히 예뻐서 산 것도 없지 않다. 그만큼 일단 외관이 너무 만족스럽고 기본 기능에만 충실한 게 아주 맘에 든다. 아껴서 오래오래 쓰고 싶다. 배터리를 끼고 트니 97.1 메가헤르츠 등 예전의 주파수가 화면에 떠서 너무 반가웠다. 혼자만의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게 싫었는데, 잘 준비를 할 때 켜놓으니 문학 작품 얘기도 들을 수 있고, 반가운 음악이 나오기도 해서 너무 좋더라.


나도 중학생 때 스마트폰이 나온 세대라 완전히 아날로그로 살진 않았지만 초등학생 때의 기억은 전부 디지털카메라, 2G 폰, mp3, 닌텐도 등 지금 같으면 핸드폰이 다 할 걸 하나하나 분리되어 있던 기억이 난다. 핸드폰이 이 모든 걸 해내니 가방은 가벼워지고 다른 물건을 살 필요 없이 사진도, 음악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럼 자유로워야 하는데 점점 더 바빠지는 건 왜일까.


자기 전에 눈은 쉬고 귀로는 생생한 이야기가 들리니 정말 행복했다. 일어나자마자 라디오를 켜고 들으며 잠에서 깼다. 일요일 새벽 6시에는 북클럽 라디오가 있다고 하니 이걸 듣기 위해 일찍 일어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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