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6 수요일 일기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면 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해지기도 해서 주소를 알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철저히 내가 누군지를 숨기고 글을 적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글 같은 경우 말이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난 어디를 가나 단체에서 다 같이 어울리기보단 소수의 몇 명과만 깊이 지낸다. 딱히 그럴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있더라. 그래서 약속을 잡을 때도 여러 명과 만나는 일은 잘 없고 거의 다 1:1이다. 그 몇 명과 친해지는 건 정말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가까워지지 않고 계속 어색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어떤 무리에서 나와 친한 사람이 빠지면 어색하게 웃으면서 겉돌다가 집에 가곤 했다.
오늘도 그런 어색한 공기를 느꼈다. 전남친과 헤어지고(걔도 나도 2 전공이 같아서 만난 과cc였다. 말이 과cc지 1 전공이 수학과가 아니면 사실상 서로 잘 모른다.) 처음 혼자 맞는 학기였는데, 3월은 정말 많이 쓸쓸하고 우울했다. 그게 이별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이 어색한 공기가 너무 선명하게 보였던 영향도 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
3년의 휴학, 재수, 초과학기 2년으로 인해 나는 같이 수업 듣는 친구보다 나이가 많이 많다. 내 나이 듣고 깜짝 놀라는 반응도 이제 익숙하고 늙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회에서 보면 아닌 걸 알아서 다소 억울하긴 하지만) 괜찮다. 그러니까 나와 인사하는 친구들이 딱히 나와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막 친해지기엔 세대차이까지도 느껴지는 나이니까.
오늘 수업이 끝나고 아는 애들끼리 빙 둘러서서 떠들고 있었는데 나는 그 사이에서 가까운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듣고 웃고 있긴 했지만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서 누굴 봐야 할지 모르는 채 어색하게 있었다. 분명 스몰톡도 하고 항상 반가운 얼굴들인데 그 순간 어떤 묵직한 고독감을 느꼈다. 아, 학기 초에 이런 관계만 있어서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불현듯 깨닫고 이내 쓸쓸해졌다.
여기까지는 이전에도 몇 번 느꼈던 상황이다. 사소한 어떤 일에 대해 해석하여 내 감정을 싣는 것. 내향인이고, 남들보다 예민해서 이런 미묘하고도 사소한 순간들 세밀하게 잘 캐치하는 거 잘 안다. 생각도 많은 거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런 순간을 안 느낄 순 없지만 오늘 이에 대한 반응에서 내가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이전이었다면 내 생각의 흐름은, '아, 애들이 나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내가 한 말과 행동 중에 이게 문제였나? 저게 문제였나?' 보통 아무 문제없을 사소한 일들을 곱씹다가 우울해지고는, '또 이런 걸 보니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구나.' 하는 지경까지 가버린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 잘못된 믿음은 확신이 되고 자책하며 미운 마음을 가득 품었다. 더 최악은 회피 엔딩(?)으로 가기도 했다는 것..
이렇게 소심하고 마음이 넓지 못한 나를 얼마나 미워했었는지 모른다. 나의 가치를 항상 낮게 생각하고 저자세로 나갔다.
여러 일이 겹쳐 삶의 의욕조차 잃어버렸던 이번 겨울에 나는 이대로 살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심리학 도서를 찾아 읽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거 읽어봤자 달라질 리 없다며' 안 읽었을 책들이었다. 자기애와 열등감, 인간관계와 관련된 것들을.. 사실은 내가 괴로워했던 이유는 어떤 '사건'이나 '사실'때문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생각, 사실과 다를 수도 있는 추측과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는 일은 정말 커다란 충격이었다.
아까 그 상황에서, 그리고 오늘 유독 대화가 안 이어졌던 아이들의 반응을 보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말을 건네도 반응만 하고 나에게 질문이 되돌아오지 않은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인사만 하고 그 이후에는 딱히 나에게 뭘 더 묻거나 대화를 하려는 시도가 없었다. 나름 설득력있는 이 생각들에 어쩔 수 없이 쓸쓸했다. 그러나 만약 이 생각들이 맞다고 해도 나이대도 안 맞고 관심사도 다른 애들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겠나, 원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애들이 나와 친해지고 싶지 않은가 보다.' 하는 생각조차 내 추측이구나.
그러고 나니 거짓말처럼 외로운 감정에서 벗어나지기 시작했다. 너무 일차원적이고 단편적인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마주 보고 웃었던 기억도 많았는데, 과제했냐고, 어디 가냐고 묻거나 스터디 같이 하자고 했던 것들도 생각났다.
심지어 오늘 내가 한 생각들이 맞다고 해서 내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니다. 몇십 억 인구 중 아주 작은, 내 근처의 몇 명의 친구들이 나와 맞지 않다고 해서 내가 친해지기 싫은 사람일까? 재미없는 사람, 소심한 사람일까? 그게 아니라는 걸 당장 학교 안의 다른 친구들도 보여주고 있다.
20대가 끝나기 전에 이런 변화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이런 찌질하고 소심한 마음들을 아는 내 가까운 친구들이 몇 번이고 나를 이해하고 받아준 것들도 참 복이었다. 사실은 내 상황에서 과도 본전공이 아닌 상황에 아는 이 하나 없이 항상 혼자 다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인 걸 안다. 꽤 많은 사람들과 인사하고 지내고, 6살 어려도 날 이름으로 부르고 놀려먹는 친구와, 드립치려고 친하게 지내는 것 같은 친구, 같이 어딜 놀러가 마음껏 구경하며 떠드는 게 즐거운 친구도 있으니까.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고 과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