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7 목요일 일기
요즘 아이패드를 아주 잘 활용하고 있어서 몇 주간 아예 필기류를 안 썼다. 아이패드는 정말 편하지만 아무래도 아날로그와 달리 물성이 없다 보니 페이지의 순서 구분이나 화면 개수가 좀 답답하긴 하다. 문구류를 너무 좋아해서 야금야금 사모아뒀는데 점점 이 편함에 익숙해지니 뭔가 아쉽기도 했다. 여전히 문구류를 구경하고 사는 게 좋은데 이제 쓸모없게 될까 봐서.
공부를 하다가 뭔가 답답함이 확 느껴져서 충동적으로 작은 노트를 하나 샀다. 어느 앱의 어떤 공간에 어떻게 쓸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 앞의 물건에 단순하게 내용만 적고 싶었다. 샤프로 적어가며 쓰니 살짝 낯설다가도 익숙했다.
방금 쓴 내용의 위치를 옮기고 싶다던지, 획을 지우고 싶을 때 다 지우고 새로 써야 하고, 지우개로 힘을 주어 문질러야 사라지며 지우개똥은 덤이다. 오랜만의 이런 과정이 너무 번거로울 법도 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편했다. 눈이 편하고 배터리가 없는 종이와 연필, 지우개. 아이패드가 혁신적으로 편한 생활을 줬어도 나의 아날로그 사랑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날로그 계획표나 일기도 원래 참 좋아했다. 자취하고 내 집 마련은 이제 먼 입장에서, 쌓여있는 다이어리가 공간을 차지하고 무겁게 느껴진 때부터 자료를 디지털화해왔다. 과감하게 버릴 건 버리고 스캔을 떴다. 나중에 다 쓸 수는 있을지 의문이 드는 다양한 모양의 수첩들은 차마 버리지 못했다. 아끼는 마음에 첫 장에 펜을 가져가지도 못한 그 소중한 종이뭉치를 어떻게 버리나. 스티커도, 메모지도, 펜도.
낭만은 일정 부분 비효율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더 빠른 길을 두고 굳이 더 예쁜 길을 찾아 돌아가는 여행객처럼 가끔은 종이와 연필을 꺼내 끼적인다. 빠르게 써지는 컴퓨터 타이핑을 놔두고 줄글 노트에 한 글자 한 글자 만년필로 흔적을 남긴다. 모아둔 스티커를 몇 번이고 다시 감상하고, 펜을 괜스레 꺼내보고 별 의미 없는 정리를 한다. 이런 일들을 어떻게, 아이패드가 대신할 수 있을까.
가방을 가볍게 만들어준 아이패드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가 없다. 늘 잘 활용하고 있음에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어떤 영역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