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18 금요일 일기
도서관 안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옥상 카페이다. 도서관에 자리가 없을 때 오곤 했는데 예전 추억이 너무 많이 묻어 있어 한동안 올 수가 없었다. 괜히 그 애와 마주칠까 봐 일부러 더 안 왔다.
시험 직전 주답게 오늘 도서관엔 자리가 없었고, 같이 공부하기로 한 친구들과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여기를 왔다. 탁 트인 시야와 편한 의자, 친절한 직원분, 저렴하고 맛있는 음료와 적당한 음악소리. 이곳은 내가 찾는 가장 완벽한 공간이다. 누구와 언제 여기를 왔던지 상관없이 여기 오면 참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도 고소한 우유가 들어간 아이스 라떼를 시켜서 자리에 앉았다. 집중이 잘되어 꽤 많은 양을 볼 수 있었고 친구들과도 같이 문제를 풀었다.
친구들이 각자 오고 싶을 때 오기로 해서 나보다 다들 늦게 왔다. 그 카페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꾸 그 애 생각이 났다. 요샌 생각도 많이 안 났고 그마저도 떠오르면 미워하기만 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생각났다. 카페 바로 앞엔 옥상의 탁 트인 테라스가 펼쳐져 있다. 여기 테라스에서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올라가자고 했었지. 저 구석에선 남몰래 안았었고, 카페에선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거나 아이스크림을 사서 서로 뺏어먹었었다. 에어컨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공강 시간을 보내며 공부를 했다.
우리가 어떤 싸움을 했고 마지막에 어떤 말들을 나눴던지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다정하거나 잘해주는 남자친구는 아니었지만 분명 날 많이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떤 물질적인 것들은 아니었지만 날 바라보던 눈빛과, 늘 잡았던 손, 장난스러운 목소리톤 같은 게 선명히 보여줬었다.
어떤 순간엔 다 잊은 듯 아무 감정이 없고, 또 언제는 왜 진작 헤어지지 않았는지 후회한다. 갑자기 내가 했던 행동들이 창피하거나 미안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래도 조금은 보고 싶고, 그다음 날엔 너무너무 밉다.
겨울, 매일 눈물로 하루를 시작하고 생생하게 그 얼굴을 그렸다. 이젠 안길 수 없는 그의 품이, 따뜻한 온기만 남아 받은 상처를 다 잊게 만들던 몇 달은 이제 지나갔다. 바보처럼 되감기를 누르려고 발버둥 치던, 자존심이고 다 내던지고 매달리던 날들마저 점점 흐려져간다.
이젠 기억이 없어진 것처럼 다 지내다가도 한순간에 튀어나오는 생각들은 아마 평생 지워지지 못하겠지. 그 애가 나를 이렇게 생각할까? 어쩌면 이미 잊었을지도, 잘 헤어졌다고 후련해하고 나를 욕하며 다시는 보기 싫을 수도 있겠지. 그런 건 별로 상관없다. 기억하려 애쓰던 모든 순간들을 반대로 지워버리려고 하면 흉터처럼 흐려질 것이다. 그러나 아예 없어질 순 없을 거다.
아주 평범한 일이라도 그 처음은 늘 특별했던 것처럼 그 모든 처음이었던 날들은 그저 무뎌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