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420 일요일 일기
지난 2년은 정말 소비의 광풍이었다. 본가에서 살며 억눌렀던 소비가 터지고, 전남친과의 데이트비도 어떻게 조절하는지 모른 채 감정적인 나날을 보내다 보니 돈을 정말 막 썼다. 원래라면 사지 않았을 것들, 더 고민할 것들을 확 사버렸다. 워낙에 쫄보라 상한선은 있었지만 갖고픈 고가의 물건들을 다 사버리고 통장이 점차 비어 가는 걸 보니 그건 그거대로 스트레스더라. 이젠 물건을 마음껏 사고 소비하는 게 나에게 기쁨이 되지 못한다.
카페 한 번 가는 것도 매번 고심하다 결국 집에서 혹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느라 매달 5번 이내로 방문했던 나였다. 본가에서 살 땐 집-일-학교만 반복하고 돈을 진짜 안 써서 돈이 절로 모였었다. 다시 학교 근처로 나왔더니 숨 쉬는 게 돈이요, 전남친과 맨날 카페를 가다 보니 이것도 습관이 되더라. 헤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돈이 아까우면서도 별 수 없이 카페를 다녔다. 외로워서, 슬퍼서, 공부해야 해서. 이유도 다양했다.
이번 달만 큰 지출이 있다고 생각하며 합리화하길 몇 달째, 이제 이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요샌 주로 도서관을 다니고, 체크카드를 쓴다. 내가 나에게 주는 용돈은 일주일 10만 원. 밥이 나오는 곳에 살다 보니 사실 굉장히 후한 용돈이다. 이중지출을 자제하고 쿠팡에서 1~3만 원짜리 물건 턱턱 사는 일 좀 그만하고, 당근도 안 보고 그 시간에 돈 관련 책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2주간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체크카드 잔액이 17000원 남고, 7000원이 남을 때까지 다시 돈을 보충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돈을 털어서 오늘은 날씨가 좋아 햇빛 잘 드는 카페에 갔다. 340원 남기고 이번 주가 끝났다.
솔직히 이제 2주밖에 안 돼서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는 모르지만 브런치 매일 글쓰기도 처음을 버티니 이제 별로 힘들지 않다. 내 돈이 무한하지 않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약속 나가고 싶으면 그 전에 카페 대신 도서관을 가서 아끼고, 밥은 최대한 사 먹지 않거나 학식 위주로 먹는다. 당연한 건데 나는 수많은 합리화를 하며 내가 힘들게 번 돈을 너무 쉽게 써버렸었다.
그렇다고 너무 궁상떨긴 싫다. 밥값을 아낀다고 아예 일주일을 5만 원으로 살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녁밥은 항상 집에서 먹을 수도 있겠지. 카페는 아예 출입 금지를 할 수도 있다. 텀블러에 물만 담아 다니고 맨날 제일 싼 걸 시키고 약속을 안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면 어느 순간 반항심리로 관둬버릴 걸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러지 않았다. 내가 쓰고 싶은 걸 너무 제한해버리면 절약의 범위를 넘어서 스스로를 남루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정한 돈이 10만 원이다. 용돈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고 스스로 돈을 잘 관리해 왔기에 이런 제한은 안 걸었었는데, 당분간 이러는 게 좋을 것 같다. 돈이 만약 남으면 여행자금에 보태면 되니 그건 그거대로 신나는 일이다.
혼자 여행 갔을 때 여행 경비를 정해두고 그 안에서 조절하며 썼던 게 참 좋았다. 항상 소비 자체에 죄책감을 느껴왔던지라 상한이 있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이 안에서는 내 마음껏 써도 되니까. 소비에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이제 절제도 할 줄 알게 되어 좋다. 적은 금액 안에서는 써도 아무 탈 안 난다는 이 안전장치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하고 이는 보복성 소비를 막아준다.
지난 몇 년간은 필요한데 없는 물건이 많아서(주로 의류) 소비는 할 수밖에 없는 거였는데 매번 뭔가 사고 나면 죄책감을 느꼈던 게 정말 소모적이었다. 그때의 나는 이런 걸 의식할 수조차 없었다. 돈 걱정은 나에게 숨 쉬듯 당연한 거였다. 마음적으로 엄마에게 독립하지 못한 것도 한몫했었다. 내가 모은 돈 쓰면서도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허락받고 사려고 했으니까. 엄마도 딱히 그러라고 한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셀프로 눈치를 봤었다. 과소비를 막는 차원에서 나쁘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쌓인 응어리를 이렇게 확 풀어버릴 걸 생각하면 앞으로도 나 스스로 결정해야겠다.
내일부터 쓸 돈 10만 원을 충전해 뒀다. 다음 주는 돈 쓸 일이 별로 없어서 평일에 커피값이나 과자 정도 사고 나면 꽤나 남을지도 모르겠다.(라고는 해도 늘 돈 쓸 일이 생기긴 한다) 밀당하듯 비용 조절을 하되 죄책감도 불안도 없으니 소비에 기준이 비로소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