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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아리 Jun 08. 2023

나와 같고, 나와 다른

#내가 너만큼 솔직했다면



남자 동기 이후로 나는 몇 번의 연애를 더 했다. 그중 제일 최근의 한 명만 길게 만났는데, 내가 첫 여자친구인 사람이었다. 다섯 살 연하라는 게 사실 뭐 어때? 이런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 난 모든 처음이고, 내겐 그렇지 않아 그랬을지도 모른다. 직진밖에 모르는 것 같던 그 마음이 고맙기도,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를 만나며 항상 하던 생각이 있었는데, 그건, 부러움이었다. 솔직하게 생각을 다 말하는 그 용기가 참 부러웠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몹시 솔직해서 탈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다. 깊은 감정이 아니거나 감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선에서 나는, 언제나 확실하고 확고한 편이다. 사회생활이 아니라면 그걸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싫은 것은 싫다고 하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그게 쉬웠던 것은 아니지만, 눈치를 보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골몰하다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은, 잘 보이고 싶기 때문. 


그러나 나와 가장 오래 볼 사람은, 그러니까 가장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건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나는 나이기 때문에.


그러니 나는 남의 눈치보다 내 눈치를 더욱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내 성향에도 잘 맞아서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 그런데 감정 문제만 되면, 오히려 내 눈치 때문에 그게 어렵다. 


나는 나를 상처가 분명한 길로 보내고 싶지 않은 걸까? 깊이 있는 관계는 그만큼 나를 깊게 상처 입힐 수도 있다는 게, 여전히 두려운 걸까? 





솔직하게 직진하는 다섯 살 연하를 보며 나는 고마움보다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왜 저러지 못했을까? 같은 처음인데, 왜 나는 겁먹고 도망이나 쳤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2년 가까이 다섯 살 연하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자괴감 외에 다른 것도 컸기 때문이겠지만.


솔직히 말해, 하필 그의 처음이 나였다는 것이 죄스럽긴 했다. 자기감정을 잘 인지하고, 솔직하게 내뱉을 용기 있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래서 첫 감정이 온갖 예쁜 색으로 물들었다면, 그에게도 좋았을 것을. 


이 때문에 나는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하면서 좋은 사람을 찾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 때까지 연애는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상대에게 좋은 연인이 되어주기 어렵다. 


그건 노력의 문제도, 태도의 문제도 아니다. 적어도 누군가를 만날 때 내 태도만큼은 명확하다고 자부할 수 있으니까.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감정인 셈.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내 안에서 아직 첫사랑, 그 남자애에 대한 감정이 완벽하게 정리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다섯 살 연하와 내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소하게는 게임을 좋아한다던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거.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거. 사람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나 애정도에 따라 대하는 게 몹시 다르다는 거.


그렇게 닮았는데, 하필 솔직함에 대한 부분이 달랐다는 게. 마치 내가 얼마나 용기 없는 사람인지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긴 했다.


하지만 그대로 멈춰 있을 생각은 아니니까. 나 역시 조금씩, 솔직함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니까. 실제로 그보다 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나아졌으니까.


그리고 다섯 살 연하를 만나던 때, 나는 많은 걸 인정했다. 


내가 누굴 좋아해도, 좋아하는 게 깊지 못한 건. 오래 유지될 수 없는 건. 내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누굴 만나더라도, 설령 좋아한다고 해도,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애를 사랑하고 있는 마음은 이미 내 본질과 같아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감정이 비교적 작아 보일 수밖에 없는 거라고.


아마 이걸 탈피할 유일한 길은, 그 남자애보다 더 사랑할 누군가를 만나는 거겠지. 절대 끝나지는 못할 테니까. 10년을, 지금껏, 없는 척은 할 수 있어도 온전히 없애지는 못한 감정이니까. 


그러니 언젠가 누굴 내 곁에 둔다면, 그 남자애보다 더 사랑할 수 있길. 그런 감정이 아니라면, 그 누구라도 거절할 수 있길. 나는 아주 오래 바라고 있다.


그래도 꽤 희망적인 것은, 내가 많이 나아졌다는 사실. 계속 이렇게 뒤로 가지 않고, 적어도 한 걸음을 내딛는다면, 언젠가는 필요한 만큼의 솔직함을 가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감 없이 표현하며 겁 없이 달려갈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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