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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라떼아리
Aug 03. 2023
03. 이 집안의 북_part 1
가장의 무게는 몇 g 일까?
우리 가족은 서로 편안하게 지낸다. 구태여 존댓말만 고집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교육 방침이 그랬다. 친구처럼 어울려 노는 가족을 추구하시니까.
아빠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먼저, 내가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평소 아빠와 말장난할 때도 많지만, 나는 여전히 아빠를 존경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는지도 모르고.
우리 아빠는 섬에서 태어났고, 많은 형제 중 거의 막내였다.
그 위에서 할아버지의 지원을 받고도 별 성과를 보이지 못해 우리 아빠는 자연스럽게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어릴 때는 장난도 참 똑똑하게 치는, 한마디로 장난꾸러기라고 친척과 아빠의 오랜 친구분들께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공부를 잘했다
고 한다.
어느 날 섬으로 온 장학사의 아들보다 성적이 좋아서 장학사가 적극적으로 섬에서 내보낼 것을 추진했을 정도로.
아빠는 좋은 대학에 두루 합격했지만, 전액 장학금을 주는 서울의 HY 대학에 입학했다. 졸업 전부터 L* 입사가 확정된 상태였고, 그 모든 과정에 할아버지의 지원은 없었다.
한 번 전액 장학금을 놓친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때는 엄마가 모아놨던 돈으로 학비를 내셨다고 한다. 당시 엄마의 동생인 삼촌을 과외해 주는 조건으로 잠시 외가에 지낸 적도 있다고 하고.
아빠와 엄마의 데이트에서 늘 돈을 쓴 것도 엄마였다고 들었다.
그리고
아빠는 평생을 거의 똑같은 사이클로 일만 하셨다.
대기업에서 아빠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아빠의 성실함이 빛을 발했던 건 지사장으로 발령받으면서 시작됐다.
꼴등이었던 곳으로 보냈더니 몇 년 만에 1등으로 바꿔놓던 능력자. 그 결과를 위해 아빠는 많은 것을 내던졌다. 가족과의 시간도 그에 포함된다.
어릴 적, 아빠에게 놀이공원에 가기로 약속받았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잦은 회식으로 아빠는 일어나지 못했고, 나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아빠에게 놀이공원에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 있어서 모질 정도인 딸에게, 그래도 아빠는 최선을 다했다.
어릴 적엔 정말로 엄마와의 사이가 극악이었는데, 그럴 때 아빠는 학원이 끝난 나를 데리러 왔다가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나만 데리고 나가 단풍이 예쁘게 물든 밤의 공원을 거닐거나 했다.
은행잎이 함께 코팅되어 있던 아빠의 편지는, 초등학생 때 받은 것인데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게 내 성장기까지의 아빠이고, 이제는 어엿하게 성공해 자기 시간이 몹시 많아지셨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 된 지도 한참.
아빠는 가족과의 시간을 사랑하신다.
술도 좋아하시고. 또, 주량이 몹시 세서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농담도 하곤 한다.
"금요일에 퇴근하면 퇴근 같지 않아요. 집에 가서 취하지도 않으시는 아빠랑 대작해드려야 하거든요. 거의 접대 아닌가, 이거? 퇴근 후 바로 출근이야 뭐야?"
가족도 친구도 자지러지는 농담이고, 나 역시 아빠와 술 마시는 게 정말 출근이라고 여기진 않지만.
아빠는 사장이고, 나는 직원(당연히 아빠의 회사는 아니다)이다 보니 입장 차이가 있을 때도 있다.
사장이 좋은 마음으로 한다고 해서 뭐든 직원에게도 감사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아빠와 나는 그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누는 편이다.
엄마는 이런 구조의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으시고, 동생은 셰프. 그렇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는 것도 부녀뿐.
더욱이 사업가로서의 면모가 무척 닮은 부녀라 아빠는 사실 내가 어릴 때부터 둘이 있으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기도 하셨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배운다. 다른 입장에서 왜 그랬는지, 무슨 생각일지 물어보고,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의논한다.
그런 아빠가 있어 나는 몹시 든든하다.
글 제목에
이 집안의 북
이라고 표현한 건, 나의 애정이 담긴 농담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아빠는 잣대가 엄격한 내가 발끈할 수 있는 말을 일부러 하시는 경향이 있다. 오로지 딸내미와 대화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에, 딸내미의 관심을 끌고 싶은 마음에.
그걸 몰랐을 때는 정말 무자비한 말로 아빠를 상처 입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걸 아는 지금은 장난으로 받아 유쾌한 독설로 아빠도 웃고, 나도 웃고, 엄마와 동생은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사실 엄청 웃긴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내가 약간 이상한 건지(주변에서 내가 정상인이라는 것에 동의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냥 한 말인데 사람들은 막 웃는다.
사고가 좀 올곧지 않은 면은 인정한다. 나는 같은 사물에 같은 감정이나 감상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비틀어 생각해 보면 조금 다른 결론이 나오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을 좋아하는 편이다. 직업병일지도 모른다. 내 직업은 자료와 통계에 통달하면서 늘 새로운 아이디어도 내야 하는 직업이라서.
.
.
아빠에 대해 쓰려니 사설도 많고 이래저래 글이 길어진다. 이럴 줄은 나도 몰랐는데. 별 수 없이 끊고, 다음 글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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