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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아리 Sep 25. 2023

08. 조금 신기한 부부

깨만 쏟아지진 않거든요?

우리 남매 못지않게 부모님 이야기도 쓸 게 참 많다.


아빠와 엄마의 나이 차이는 한 살. 아빠가 한 살 더 많으시다. 그러나 엄마는 외가의 맏딸이고, 아빠는 친가의 막내 쪽이다. 완전 막내는 아니고, 밑으로 동생 하나 위로는 형이 둘, 누나가 둘인. 


친가와 외가의 이야기를 쓰게 될 시점이 오리란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쓰려니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건 양쪽 다 내 혈연이나 다름없는데도 온도 차이가 꽤 크기 때문이다. 


나는 친가에서는 하나뿐인 친손녀였고, 외가에서는 첫째다. 


당연히 극진한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외가에서는 독불장군이나 다름없다. 


친가의 경우, 할아버지가 굉장히 엄격하셨기 때문에 할아버지 생전에 그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신 친자식조차 업어준 적 없으시다는 우리 친할아버지는, 나를 업어 키우셨다. 


내가 머리를 감으면, 드라이기로 손수 머리카락을 말려주시기도 했다. 


나보다 어린 동생은 걷게 하고, 나는 업고 다니셨다. 5일장이 있어 우릴 데리고 나가실 때면 내 손을 잡고, 동생은 장바구니 카트를 잡고 따라오게 하셨다. 


그런 내 동생조차 할아버지에게 무척 사랑받는 손주이긴 했다. 


아마, 그 많은 형제 중 우리 아빠가 할아버지께 제일 잘했기 때문도 있을 거다. 아프실 때도, 이사를 가야 해서 집을 사야 했을 때도, 생신이나 명절 등 모든 날에, 우리는 온 가족이 할아버지를 뵈러 갔었으니까.




까다로운 할아버지의 입맛에 맞춰 매일 다른 갖가지 진수성찬을 차려내던 엄마의 손목은 망가졌지만, 적어도 나는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나를 볼 때는 세월을 따라 무섭게 굳어진 입매조차 환하게 피우셨던 할아버지다. 심지어 내게 말씀하실 때는 목소리조차 달랐다. 무미건조하고, 엄하던 목소리에 흥얼거림이 섞였으니까.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서 자식인 아빠조차 기함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 옆에서 나는, 무척 사랑받으면서도 여우짓을 참 잘했다. 이를테면, 천자문. 


할아버지는 천자문을 다 외우고 계신 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 앉아 고사리 손으로 한자를 따라 적던 애였다. 애가 노는 게 재미있지, 한자가 무슨 재미였겠나?


그 어린애가 쓴 구불구불 한자를 보면서도 세상 제일 명필이라고 환하게 웃으시던, 할아버지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한자를 썼다. 할아버지 옆에 앉아 할아버지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고, 할아버지 자식들도 들어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자장가를 매일 같이 들으며 잠들었다. 




그토록 할아버지를 사랑하는데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현재, 친가 사람들과는 상종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어쩌면, 나는 그들을 증오한다. 


그들이 하지 않아 우리 엄마 혼자 감당해야 했던 그 많은 시간이, 그렇게 망가진 엄마의 손목이, 그때의 일로 여전히 손목이 아파 자주 잠들지 못하는 엄마를 내가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하지 않아 혼자 자식 노릇을 다 했던 우리 아빠가 짠해서. 그러면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우리 아빠와 엄마는 누구보다 많이 울었다. 장례식도 안 온, 진짜 후회해야 할 사람들 따로 있는데. 제일 자식 노릇, 며느리 노릇 잘한 우리 아빠, 엄마만 그렇게 서러웠다.


여하튼, 내가 외가처럼 친가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본질적인 이유 때문이다. 내가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번민은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더욱 심해졌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기 시작했다.

친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어떻든 뵈러 갔다. 그러다 아주 가끔 보기 싫은 친척을 마주치기도 했지만, 사실 마주칠 일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크게 마음을 쓸 일도 없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조차 안 온 이들과 그 장례식에서도 돈만 찾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빠가 불쌍했다. 조문객의 80% 이상이 아빠의 조문객. 그런데 모인 모든 부조를 구분 없이 합쳐서 n빵을 하자는 그 말에, 나는 더 생각하길 포기해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도. 두 분의 장례식도. 전부 아빠가 혼자 부담하게 해 놓고, 부조는 모아서 나누자? 그것도 장례식장에서? 


나는 할아버지도 불쌍했다. 살아생전, 받아갈 거 다 받아가고 발길 끊은 자식들이 그래도 가는 길 배웅은 나왔나 보다 하셨을 할아버지가 그 말을 들었다면. 심정이 대체 어떠셨을까? 




여하튼, 그런 사실 관계가 있는 것치고, 부모님은 잘 지내신다. 흔히 말하는 금슬이 좋은 부부랄까?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말하고, 부러워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 역시 그저 투닥거리는 정도로 끝나고 평소 두 분이서 시간도 자주 같이 보내시고, 여기저기 다니시는 걸 계속 보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하고, 서로의 가족을 받아들이고, 참기 어려운 부분을 감내하며 이렇듯 함께 늙어가기란 얼마나 힘든 것일지. 그런 생각은 많이 하게 됐다. 


그렇기 때문일까? 나는 꽤 화목한 가정에 속한 채로도 비혼주의자 성향이 몹시 강하다. 


나는 엄마처럼 그 모든 시댁 관련 이슈를 참고, 견디고, 해낼 자신이 없다. 내 일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아빠처럼 한 사람에 성실하게 온 관심을 둔 채 평생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내 관심은 몹시 박한 편이니까. 

그리고 나는 나처럼 드세고, 못된 자식을 키울 자신도 없다. 


그냥 내 일을 마음껏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최선이지 않을까?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없다면, 아예 부부가 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부모님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분명 엄마도 성격이 센 편이고, 아빠도 고집이 있으신데. 두 분은 전혀 다른 성향에 생각하는 관점조차 정반대인데. 서로에게 입힌 상처가 무수할 건데. 


많이 돌아다니셔서 다리가 아프다고 하시는 엄마에게 별말 없이 그 다리를 자기 무릎에 올리고 주물러주시는 아빠를 보면서. 아침은 먹지도 않고, 밤잠을 잘 못 주무셔서 아침에 취약한 엄마가 아빠의 아침만은 꼭 챙기는 걸 보면서. 


남들 보기에 깨가 와르르 쏟아지는 부부보다, 그 모든 일상에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배려하고 행동하는 모든 순간이. 이런 게 진짜 부부일까? 그런 생각도 든다.


모쪼록 지금까지 그랬듯, 투닥거려도 언제나 서로 곁에 있어주시길. 두 분 다 오래오래 건강해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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