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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길을 만드는 법, 수어문학 모임에서 배운 것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by 귀로미

"길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길을 만들어야죠."

"아니요. 그런 건 일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지요."

"길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길을 찾지 마세요.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성공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걸 길이라고 부르는 법이니까."

- 드라마 <대행사> 중



2024년 12월 8일, 수어민들레에서 주최한 '제4회 수어문학 예비 작가들의 수다'에 참석했다.

'수어민들레'는 수어문학이라는 아름다움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단체로, 변강석 교수님과 손청 선생님이 이끌고 있다. 강의에서 만난 인연으로, 나도 그곳에 발을 들였다.


모임에는 농인과 청인 약 20명 정도가 모였다. 모두가 수어문학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농인이지만 성인이 된 후 수어를 배운 사람도 있었고, 청인이지만 코다여서 수어가 능숙한 사람도 있었다. 수어의 능숙함은 달랐지만 수어에 대한 애정만큼은 모두 같았다.


수어문학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수어노래'다. 우리가 흔히 아는 '수어노래'는 한국어 어순을 따르는 '수지한국어'로, '한국수어'를 바탕으로 한 수어문학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한국어에도 문법이 있듯 한국수어에도 한국어와 다른 독자적인 문법이 있다. 영어 노래를 한국어 어순으로 부른다고 상상해 보라. "I love you"를 "I you love"라고 부른다면 어색하지 않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수어노래'는 어색하며, 한국수어를 언어로 존중하지 않는 일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반면, 수어민들레가 말하는 수어문학은 달랐다. 수어민들레에서는 '한국수어'를 바탕으로 한 수어문학을 알리고 있었다. 한국수어의 문법에 따른 문학, 이게 그들의 진짜 예술이었다. 나 또한 농문화와 수어에 대해 자세히 알기 전까진 수어노래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농문화를 배우면서 청인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야만 수어를 진정으로 존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어문학 예비 작가들의 수다'는 각자 자신의 수어 문학 작품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먼저 선생님의 수어시를 함께 시청했다. 선생님의 수어시 <우리는 좋은 친구>는 청인 친구와의 어린 시절 추억을 담은 작품이었다.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다.

https://youtu.be/KCCAuGlU6ow?si=eC1MqZv93dFBftGX


또, VV(시각적 묘사) 1인자로 불리는 분의 <육상대회>는 자유로운 공간 사용, 역할 전환, 줌인-아웃, 빠르기로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었다. 빠르고 느린 부분은 편집본이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VV를 잘하는 사람 대부분이 남자라고 하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VV 예술가가 여성이라는 점이 정말 자랑스럽고 멋졌다.

https://youtu.be/SmZ-VmzQ2vY?si=q5wnrT67jL1WI5dt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먼저 수어시에 대한 소개하고 함께 영상을 시청했다. 화면 속 나의 수어 실력은 부족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온전히 전달됐다는 것을. 감히 피드백을 할 수 없을 작품이라는 평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어가 부족한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게 부끄러웠지만, 내 안에서 나온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다.


사람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지점이 다른데,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오늘 만난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수어문학의 1인자, VV의 1인자, 농인프리다이버 등... 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를 길어 올려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 그들이 1인자로 불릴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자기만의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참 멋진 사람이고 싶었다. 멋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꼭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멋진 사람이 되기보다 그저 내 영혼이 언제 즐거운지를 알고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들처럼 나 자신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이고 싶다. 나도 '나라는 사람의 개척자'가 될 때까지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꾸준히 전해야지.


그들의 삶, 그리고 나의 삶을 언제까지나 응원한다.

당신도 당신만의 길을 걸어가길!



수어민들레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signm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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