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서 365 수어 일력>을 만들다
2023년 12월 1일, 특수교사가 된 이후 처음으로 수어 강의를 들었다. 강의 첫날, 두 시간 내내 강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로지 상대에게만 집중하도록 하는 언어, 수어는 분명 사람을 존중하게 만드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수어에 흠뻑 빠져들었다. 왜일까? 뭔가 좋은 것을 알게 되면 자꾸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다. 이 아름다운 언어를 나 혼자만 알 수 없어, 세상에 알리고 싶어졌다.
2024년 1월 1일, 무모한 도전을 선언한다.
"1년 동안 그림일기를 올리겠습니다"
어디서 난 용기인지, '좋아서하는어린이책연구회' 카페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땐 몰랐다. 365일 동안 무언가를 매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이상, 약속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림일기를 시작한 이유는 나 자신 때문이었다. 늘 자신에게 높은 잣대를 갖다 대며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몰아붙이고, 칭찬도 토닥임도 없었던 나. 그런 나 스스로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게 어려워서, 매일 나를 아껴주는 그림일기를 그려주면 나를 조금이나마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만, 그림일기 프로젝트가 단순한 자기 사랑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당시 나는 수어에 빠져 있었고, 그 언어가 세상에 조금 더 알려지기를 바랐다. 수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림일기에 수어를 담기로 했다. 날짜를 수어로 넣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예쁜 수어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림일기를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에, 그 영향은 아주 미미했지만 적은 사람에게라도 수어를 알릴 수 있기에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카페에 올렸던 나의 선언은 이렇다.
"<나를 아끼는 일기>를 쓰기로 결정했어요! 저는 제 자신을 아껴주지 않을 때가 참 많은데요, 그래서 하루 10분, 나를 아껴주는 그림과 말을 통해 나 자신에게 힘을 주고자 해요. 이 그림일기가 여러분에게도 작은 힘이 되었으면 해요. 2024년 말에는 그림들을 모아 일력으로 만들어 볼까 해요. 제가 혹시라도 그림일기를 올리지 않으면 꼭 얘기해 주세요. 왜 안 올리냐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에요 ㅋㅋ 그럼 또 힘을 내서 그림일기를 쓸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리고 1월 1일은 수어로 써봤는데요, 그림일기를 보면서 수어도 한번 배워 보세요^^ 여러분, 많관부!! :)"
다시 읽어도 참 패기 넘쳤다. 그림일기를 이어가는 동안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365일 동안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결국 일력을 출간하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내가 좋아서 365 수어 일력>이다. 사실 그림일기 프로젝트를 함께 해준 몇몇 분들과만 일력을 나눌까 했는데, 일력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받은 힘과 용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고 싶은 어른이들을 위한 일력> 펀딩을 진행하게 됐고, 그 결과 434%라는 성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수어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작은 터닝포인트였다. 수어를 그리는 손끝에서, 나는 나 자신을 만나고 또 다른 사람들, 그리고 많은 기회들을 만났다. 펀딩을 통해 많은 응원도 받고, 작가와의 만남까지 의뢰받았으니 말이다. 그저 나를 아껴주고 싶었던 마음이, 수어가 좋아서 세상에 나누려 했던 마음이 나를 더 큰 세상으로 이끌었다.
어쩌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거창하거나 특별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 그 마음을 꾸준히 이어가는 끈기 그리고 그것을 나누려는 용기만 있다면
세상은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질 것이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당신은 어떻게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