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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Sep 25. 2021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물결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대변혁

서양에서 피어난 금융업의 꽃은 돌연변이처럼 시들 줄 모르고 계속해서 더 화려하게 피어났다. 실물경제는 금융경제의 손을 잡고 기존의 한계를 부숴버렸다.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과감하게 자금을 융통했으며 야망을 이룬 이들의 손에 의해 사회에는 더 큰 부가 창출되었다. 자본주의의 엔진인 금융업과 그 연료인 도전·혁신이 모두 갖추어지면서 경제 규모는 비약적으로 확장되었고,  마침내 역사의 주도권이 서양 문명으로 넘어갔다.


  자본주의가 발흥한 후로 세계사의 무게중심이 서양에서 이탈한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상업혁명이 일으킨 지각변동으로 인해 발생한 자본주의라는 쓰나미는, 500년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를 길이의 광대한 역사적 흔적을 새겨 놓은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자취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세계사의 지층을 파헤쳐 보는 것과 같다.


  


  기독교 교리는 상업으로 거금을 벌어들이거나 대부업으로 이익을 거두는 행위를 금기에 가깝게 취급했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기독교 교회가 사회적 규칙을 지배했기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 금융을 도맡은 이들은 주로 유대인들이었다. 하지만 상업혁명이 촉발된 이후 유럽으로 부가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자, 크리스천들도 서서히 경제관념이 바뀌게 되었다.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욕망과 타협해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태도를 합리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생활 규범을 규정하는 것을 넘어 정치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위세를 누렸던 교회는, 권력과 부를 틀어쥐면서 점점 일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종교적 권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농락하여, 그들은 자의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사면하는 면벌부를 팔아 더 많은 돈을 챙겼다. 정치력과 경제 논리가 만나 부패한 교단에 도전장을 내민 이들이 바로 루터와 칼뱅을 위시한 프로테스탄트였다.


  신교는 경건한 신앙심은 유지하되, 신을 위하는 방식을 개혁했다. 그들은 현세에서 주어진 소명에 따라 직업적인 역량을 다지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사명임을 부르짖었다. 강력한 위계와 경직적인 규범으로 돈벌이를 단순한 욕구 충족 수단으로 낙인찍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 직업적인 소명 의식이 결부되어 의미를 실현하는 활동으로 격상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직업 윤리론'은, 물질 영역이 종교적 신앙심과 얽혀
새로운 규범으로 승화한 결정체였다

  급격하게 팽창하는 경제 환경 속에서 정치적 권위로 경직적인 규제를 가해 욕구에 족쇄를 채우는 교회 중심 시스템은, 욕망에 충실한 삶과 규제가 요구하는 삶 사이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뚜렷했다. 더욱이 이들은 신도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서도, 태연히 면벌부로 이득을 취하며 신뢰의 추락을 자초했다. 프로테스탄트는 이러한 여건에서 새로운 규범을 제시하며 설득력을 얻었고, 교회에 반발심을 가졌거나 교회와 이해가 상충하는 이들을 품으며 100년 만에 구교와 맞먹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유럽에 들이닥친 경제적 변화는 종교적인 틀마저 변형시켰다.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고 적극적으로 취하는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서서히 옅어져 갔으며, 사고방식의 변화는 사회 전반의 풍경의 변화로 이어졌다.




  상업혁명 이후 자금의 흐름은 줄곧 창조적 진화를 거듭했다.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유연한 사고를 하게 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은행과 주식회사가 튀어나왔다. 금융경제의 발달로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확장되자, 종교적 지침이라는 심리적 브레이크가 풀려가던 사람들은 여유만 있다면 너도나도 기회에 투자했다. 무역을 통해서 창출되는 막대한 부를 나누어 가지려는 이들은 교역 사업에 돈을 맡겨, 거래가 성공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큰 금액이 오가는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무역에서 창출되는 이익을 쓸어 담기 위한 경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장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고, 아시아와의 해상 무역로를 선구적으로 개척한 곳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그러나 세계 최초로 주식회사라는 개념을 현실화하여 금융경제의 선두로 떠오른 네덜란드는, 압도적인 해운 경쟁력을 자랑하며 그들의 패권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 네덜란드는 영국에 군사적으로 제압되었다. 유럽 국가들은 기회만 있으면 해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나섰고, 격심한 경쟁으로 인해 1세기마다 해양의 최강자가 바뀌었던 것이다.


  개인이 투자자로 참여한 사업에서 이윤의 기댓값과, 해양 강국들이 벌이는 패권 다툼의 판돈은 시간이 갈수록 불어났다. 그리하여 16세기 초만 하더라도 '동지에게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기독교 교회의 논리가 드리우던 유럽은, 단 한 세기 만에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가 잠재적 이익을 추구하여 이름 모를 사업가에게 돈을 맡기고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국가가 나서서 은행에 의존하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의 삶에 가장 밀착한 것이 더 이상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논리가 아닌, 경제적인 논리가 된 것이었다.


  경제 논리의 지위가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은 굉장한 파급력을 불러왔다. 관습적 혹은 종교적으로 유지되어 오던 기존의 사회 규범이 서서히 경제적인 질서로 대체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형의 시스템적 변화는 자본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상업혁명에 의한 물가의 급등으로 소작료에 의존하던 이들과 토지를 소유한 이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리고 대규모 업체를 꾸려나갈 수 있는 사업가와 그들에게 고용되는 노동자의 희비도 엇갈렸다. 토지, 증권, 업체를 소유한 자본가는 사업이 망할 리스크를 짊어지거나 임금을 지불하는 대신, 자신의 의도대로 대규모의 자금과 노동자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노동자는 누구를 위해 일할 것인지 결정하는 대신, 어떻게 일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는 자본과 고용주에게 넘겨주었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자본주의는 사회 구성원, 종교 공동체 중 한 명으로 규정되던 존재를
시장의 구성 요소 중 하나로 재정의했다

  노동자의 삶에 가장 강하게 개입하는 것은 더 이상 종교적인 지시가 아니라 그의 임금이었다. 기독교 정신을 담아 만들어진 구빈법 역시, 복지의 딜레마에 부딪혀 경제적으로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대상자를 줄였다. 경제 논리는 개인 정체성의 무게중심을 사회 집단에서 경제 단위로 옮겨 놓았으며, 종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사회 안전망을 잠식해 더 많은 이들을 구제 대상에서 잠재적 노동력으로 전환시켰다.


  자본주의라는 피조물에 의해, 창조자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수정하고 그 안에 편입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다. 그 힘이 단순히 경제적인 영향력만을 행사해 왔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경제적 아이디어가 역사의 새 단계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경제적 성공을 이룰 기회를 확장한 창의성의 결실이다. 이전 체제보다 월등히 쉬워진 자금 융통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면 사회경제적 지위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경제 발전을 이뤄준 것과, 이론적으로 부에 대한 접근 권한을 모두에게 확대한 공로는 혁혁하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경제적 대전환으로 모든 것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노동 시장에서 노동자는, 금융 시장의 주식과도 같이 상품화하여 가격이 매겨지는 대상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노예 시장에서 사람에 가격이 부과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시장에 다수의 사람들이 뛰어들어 스스로를 상품화한 것은 자본주의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만물의 상품화, 배금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해 우리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사회적 규범의 자리마저 빼앗아 간 경제 논리의 이러한 행패 역시 자본주의가 초래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영향력은 너무도 강력해서, 300년 전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우리도 "생명에 가격표를 붙이는 것은 부적절한 일이다"라고 말하면서 생명에 가격을 책정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병폐나 모순은 우울한 뉴스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도 이 체계적인 경제 논리보다 더 타당한 대안을 쉽게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기나긴 족적을 남겨오면서 생존 매뉴얼을 계속 연장시켜 왔기 때문이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세상을 뒤바꾼 자본주의의 저력은, 시대의 물음에 대답하는 능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인용문에 Mapo 꽃섬 서체를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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