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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Oct 02. 2021

쾌속열차 혹은 폭주기관차 ─ 근현대 문명의 두 얼굴

인류사의 명암을 극대화한 산업혁명

  대량생산은 역사의 축복이다.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류는 무언가가 부족해서 고심을 한 적은 있어도, 무언가가 넘쳐나서 고민인 상황에 놓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 체제에서 고민의 성격은 이전 같았으면 사치스럽다고 여겨졌을 성질의 것으로 점차 변해 갔다. 오늘날 세계는 굶어 죽는 사람보다 비만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 70년 전 먹을 것이 없어 대외 원조에 의지해 겨우 입에 풀칠을 하던 나라의 사람들이, 지금은 10대의 비만율을 의제로 삼고 있는 그림은 상당히 기묘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얻는 게 있으면 그만큼 내어주는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토록 열망하던 물질적 풍요를 손에 넣었지만, 그 대업을 성취하기 위해서 인류는 갖가지 형태로 대가를 지불해 왔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강렬한 물질적인 욕망을 이루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온 과정의 반복이 인류의 근현대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영광과 비탄의 대부분은 산업혁명 이후에 그 형태가 완성된 것이다. 문명이 선사하는 축복과 저주 모두, 300년 전부터 누적되어 온 인류의 공적과 업보의 산물이다.





  모직물 산업에서 출발한 기계 공업이 산업 전방위로 확산한 효과는 엄청났다. 철제 제품이 값싸게 생산되면서 서민들도 일용품을 살 만한 여건이 조성되었고, 더 넓은 소비자층을 확보한 산업은 더 많은 이윤을 거두며 사업을 더 확장해 나갔다. 더 커진 공장에는 더 많은 노동자들이 들어갈 수 있었고,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자본가와 새로운 시장의 빈틈을 파고든 상인들은 더 큰 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전에 비해서 모두의 경제적인 여력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생계 이외의 것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시간적인 차이는 있었지만, 전체 인구에서 실질적으로 정치적인 권리를 가진 이들의 비율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왕실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참정권이 독점적으로 행사되는 시대는 점점 저물어 갔다. 자본가와 신흥 상공업자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해 줄 제도 장치와 정치 세력을 요구했고, 그들의 바람이 실현되자 투표권의 범주가 노동자로 확장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티스트 운동과 프랑스 시민 혁명은 결국 후대에 민주주의로 결실을 맺었다.


산업혁명은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과 공평한 참정권을 행사하는 체제를 모두에게 선물해, 현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상업혁명의 유산인 자본주의를 계승해 경제의 대대적인 발전을 견인하고, 더 나아가 모두에게 이전보다 더 자유롭고 평등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정치 체제의 탄생을 이끈 것은 산업혁명의 최대 공적이다. 산업혁명이 없었다면 핸드폰이 발명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인종과 자산 그리고 권력에 따라 참정권을 차별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전보다 나은 경제력을 갖추고, 평등한 참정권을 얻은 다음에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문화였다. 산업과 과학의 전방위적인 진보가 거듭되자 매스 미디어 개념이 생겨났고, 그 창구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도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모든 곳으로 뻗어나간 자본의 논리가 문화와 결합하면서, 마침내 문화도 대량 생산되고 대량 소비되는 시대가 도래하기에 이르렀다. '대중문화'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상업적 배경이 결합되어 있어, 고급문화와 대비되는 열등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그러나 문화의 진입장벽이 낮아진 것은 분명 유의미한 성과이다. 중세만 해도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은 여유롭게 문화를 향유하기는커녕, 글을 읽고 쓸 줄도 모르는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만성적인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산업사회에 진입한 뒤 일반 시민도 먹고사는 문제에 관해 숨통이 트이고, 투표로 다른 이들과 동등하게 참정권을 보장받게 되었으며, 이전 같았으면 꿈도 꾸지 못할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누리게 해 준 산업혁명은,
문화생활을 모두의 삶에 스미게 하여 역사적 진보의 화룡정점을 찍었다
 

  젊은이들은 유튜브가 없는 삶, 그리고 영상에 비치는 셀럽들과 최신 트렌드를 볼 수 없는 삶을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자유롭고 여유롭게 향유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는 산업혁명이 이룩한 물질적, 정신적인 틀이 있기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산업혁명이 이러한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치른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산업혁명은 자본과 기계화를 위시한 기술이 어떤 파괴력을 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산업혁명의 세례를 받아서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는 산업 기반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을 완비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이는 유럽 국가들이 너도나도 산업화를 시도하고, 원료와 소비 시장을 노리는 식민지 확보 경쟁에 뛰어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경합이 과열되어, 야만적인 식민 통치와 잔혹한 세계 대전의 형태로 시대적 광기가 표출되었다.


  열강으로 등극한 국가의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혜택을 본 것도 아니었다. 산업화로 갈수록 커지는 규모의 시장에서, 자본가들은 산업 생산과 자본 수익의 두 루트를 통해 노동을 하지 않고도 부를 쉽게 확대 재생산할 수 있었다. 반면, 노동자는 제도적 보호가 미흡하면 생산비를 최소화하는 계산에 따라 불리한 근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초기 자본주의가 만든 위계는 산업사회에 들어서며 가혹한 노동 환경을 만들어냈다. 산업혁명 이후 법적인 수직적 신분제는 자본의 논리에 의한 경제적 종속 관계로 대체되었다.


산업혁명은 국가 간 질서와 사회 내부의 위계를
경제 중심으로 철저히 재편하였다
  

  대량생산이라는 축복을 가져온 기계화의 그림자도 짙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적기와 증기기관으로 시작된 기계화는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AI와 3D 프린터, 자율주행 자동차로 발전했다. 갈수록 고도화하는 기계와 함께 인간의 1인당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노동생산성이 10배 올랐다는 것이 인간 스스로의 역량이 그만큼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계는 인간보다 몇천 배, 몇만 배 빠른 속도로 진화한다. 기계의 비용 대비 수익 창출 효과가 직원보다 커지는 순간, 회사에서 그의 입지는 사라진다.


이윤 추구의 동기로 과학기술과 산업이 기계를 쉼 없이 정교화한 결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인간이 계속 신경을 써줘야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청소기나 자동차는, 이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알아서 돌아다니며 제 일을 하는 존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업무의 자동화와 AI의 고급화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직장이나 공장에서 구식 기계처럼 '대체되어야 마땅한' 일개 생산 요소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고 있다. 역사상 최초로 생물 종이 동종 다수의 존재 가치를 없애버리는, 무혈의 말살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대량생산 체제를 불러오며 인류가 바라마지 않던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우리는 그 대가가 쓰인 청구서의 하단에 인간 다수의 존재론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인류사상 가장 찬란한 빛과 가장 짙은 어둠이 동시에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그가 없었다면 이룩할 수 없었던 영광을 써 내려간 대신, 그가 없었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흑역사와 딜레마도 같이 연대기에 조각해 두었다. 인간은 역사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형태로든 그에 상응하는 희생이 따름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선대가 욕망에 이끌려 고른 선택지의 합이 산업혁명이었고, 우리는 그들의 선택에 따른 권리와 책임을 지고 있다.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18세기 말부터 일어난 유럽의 산업 전반에 걸친 혁신이지만, 농업혁명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듯이 산업혁명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에 대한 욕망은 자본에 깃들어 계속 산업과 과학의 고도화를 유도할 것이다. 원초적인 욕망이 인간을 수하로 두며 인류사를 구성해 왔듯이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어질 산업혁명의 연장선상에서 문명의 혜택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혜택에 취해 등 뒤에 있는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 과거로부터 내려온 숙제를 우리가 떠안고 있는 것처럼, 지금의 선택은 미래 세대에 더 골치 아픈 형태로 변질되어 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인용문에 Mapo 꽃섬 서체를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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