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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Oct 01. 2021

역사적 대도약, 산업혁명의 탄생

영국으로부터 포착된 새로운 시대의 여명

중세에 동방은 창조자, 발견자였고 서방은 모방자, 개량자의 위치였다. 그러나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통일 국가를 지향한 아시아의 문명국들은, 지방분권적 성향이 강했던 유럽의 국가들에 비해 혁신의 동기가 약했다. 유럽의 암스테르담과 런던, 리스본은 경쟁적으로 상업을 육성하고 해상 패권의 중심지가 되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명은 원의 유산인 해상 교역의 이점마저 스스로 해금으로 봉쇄하며 부와 문물의 창출 가능성을 크게 닫아버렸다. 그리고 진보의 역사는 대양을 접수한 유럽의 손을 들어주었다.


  신대륙의 발견과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 벌어진 상업혁명으로 유럽은 역사를 선도적으로 개척하는 주자가 되었다. 그동안 꿈꿔 왔던 대형 프로젝트들은 금융경제 앞에서 현실이 되어, 더 많은 배가 항해하고 더 많은 총포가 보급되는 세상이 펼쳐졌다. 사회에 유입된 막대한 부로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 했고, 이전보다 커진 시장에서 한몫을 잡으려는 이들은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재화를 생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욕망과 고뇌의 융합이 이윽고 산업혁명을 낳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백년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다툼이었지만,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막대한 피해와 비용이 유발되는 전쟁을 한 세기 동안 했을 리가 없다. 백년전쟁에서 양국이 왕위 쟁탈만큼이나 중시했던 것이 경제 이권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중세 해상 교역의 거점 중 하나였던 플랑드르 지방은 당대에 쏠쏠한 부가가치를 생산했던 모직물 생산으로 유명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프랑스와 양모를 공급하는 영국이 이 지역을 놓고 맞붙었다.


  지리멸렬한 전쟁에서 영국은 프랑스 내의 영토를 거의 상실했다. 프랑스의 왕위를 쟁취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운 것치고는 성과가 보잘것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뜻밖의 횡재를 거두었다. 프랑스에 타격을 주기 위해 양모의 공급을 끊었던 것으로 인하여, 플랑드르의 모직업 기술자들이 대거 영국으로 넘어왔던 것이었다. 원료와 노동력, 기술을 모두 품음으로써 값나가는 재화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다.


백년전쟁으로 정치적 이득을 내주고 경제적 이득을 얻은 영국은
자본주의로 향하는 길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디뎠다

  완결성 있는 양모업의 정착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몰고 왔다.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으로 영국도 많은 농민을 잃었다. 그리하여 농사보다 적은 노동력으로 유지가 가능한 목축업, 그리고 그와 연계된 양모업에 시선이 옮겨 갔다. 자체 생산 메커니즘은 외부에 의지하지 않고도 많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인클로저 운동은 양모업의 거침없는 성장을 가속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경작지가 목장으로 바뀌고 그 변두리에 울타리가 세워지면서 많은 소농들이 입지를 잃었으나, 그들이 맞이한 비극은 문명의 발전에 뜻밖의 호재로 작용했다. 정부도 미처 구제하지 못한 이들이 모직물 업계와 도시 상공업에 노동력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장을 거듭하던 모직물 산업은 대규모 생산 체제를 운영해 수요를 뒷받침할 자본가를 등장시켰다. 순식간에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조각들이 모였다.


  신대륙이 개척된 이후 대양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각국의 무기 수요가 폭증했고,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인구와 함께 에너지 소모량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유럽 문명의 수준이 월등히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목재와 숯 이상의 효율을 발휘하는 에너지원을 찾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불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지탱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파괴적인 삼림 벌채가 몇 세기 동안이나 이어졌다.


  한정된 목재로 커져만 가는 에너지 수요를 뒷받침하기엔 역부족이었고, 17세기에 이르러 품귀 현상이 일어나 목재의 가격이 세 배로 뛰었다. 숯으로 열을 내서 철을 가공했던 터라 생산 비용 급등으로 패닉에 빠진 제철업은 어떻게든 대체 원료를 찾아야 했다. 절박했던 그들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 바로 석탄이었다.


풍부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탄은 확장일로의 산업 사회를 지탱할
값싸고 효율적인 에너지원으로 떠오르며 역사의 히어로로 등극했다

  석탄은 석유보다 편재성이 작은 자원이었기 때문에 싸게 공급이 가능하다는 매력이 있었고, 숯보다 두 배나 나은 화력을 제공했다. 용광로의 온도를 올려 더 질이 좋은 철을 제련할 수 있었고, 값싼 철제 일용품은 서민들의 생활 편의를 더해 줬다. 나무를 계속 베어 원료로 투입했다면 언젠가 목재 조달 비용 문제로 궤멸했을지도 몰랐을 산업이, 고민 끝에 마스터 키를 찾아낸 것이었다. 그러나 혁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나은 에너지원을 찾아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 에너지원을 활용할 기술의 혁신을 일으켰다.


  석탄이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매김하자 채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광부들이 석탄을 캘수록 그들은 지하 더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했는데, 그러다가 지하수 줄기를 건드려 갱도에 물이 흘러들어오기도 했다. 안정적으로 작업을 하기 위해 양수기가 필요했지만 고전적인 도구로 많은 물을 퍼내는 것은 어려웠다. 어떻게든 이 난제를 해결해야 했던 탄광 소유주들은 고심에 빠졌다.


   영국에는 대자본과 재산권을 존중하는 선구적 제도가 갖추어져 있었기에, 지식인들이 기술 진보를 이루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눈앞의 막대한 이익이 걸린 업계 사람들은 그런 과학기술 수재들이 제시한 갖가지 이론을 바탕으로 대안을 실험했다. 그중 실린더와 피스톤을 이용한 증기기관이, 뉴커먼과 와트라는 위대한 기술자의 손을 거쳐 최고의 옵션으로 거듭났다. 자본, 노동력, 에너지원, 기술의 4대 요소가 모두 모여,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었다.

    

자연과학, 대규모의 이익에 걸린 자본,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하는
특허의 존재는, 천재들을 새 시대를 여는 위대한 발명으로 이끌었다
 

   증기기관이 개량을 거듭해 산업에 투입된 결과는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철광석과 석탄 산지를 산업 현장으로 옮겨줄 증기기관차가 탄생했고, 모직물 업계에서는 방적기가 등장했다. 새로운 에너지원과 새로운 기술의 결합으로, 기계는 일손을 덜어주고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 주는 산업의 구원자로 급부상했다. 원료와 노동력의 제약으로 규명되던 산업 생산의 상한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간은 지구 역사상 최초로 자신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대상을 통제하는 생물로 올라섰다. 방적기는 사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옷감을 만들어낼 수 있고, 기관차는 사람과 말이 협력한 것보다도 더 빠르게 물건과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사람과 자본은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원했고, 기계는 더 많은 수요와 생산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 현상이 가장 빨리 일어난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최강의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도 물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영국과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둔 프랑스는 영국보다 토양과 기후 조건이 좋아 인구도 라이벌을 웃돌았다.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상업적 감각이 좋은 국민이 있었으며, 한때 대양을 주름잡은 패권 국가였다. 그러나 자본이 성장할 환경, 생산기술이 발전할 계기,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자극하는 제도, 패권을 유지할 군사적 역량을 모두 갖춘 나라는 영국밖에 없었다. 그리고 역사는 영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계의 잠재력을 가장 먼저 경험한 영국의 성공 사례는 금방 이웃으로 퍼져나갔다. 본격적인 기계화라는 흐름을 받아들인 국가들은 빠르게 산업적 역량과 군사적 파괴력을 단련했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기존의 환경은 성장을 제약하는 답답한 틀로만 느껴졌다. 결국, 유럽은 세계의 질서를 그들의 의향대로 재편하려는 대담한 시도에 나서게 되었다.



(※ 인용문에 Mapo 꽃섬 서체를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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