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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Sep 29. 2021

시대의 끝이자 시작, 르네상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유럽

  누구에게나 친숙한 단어, 르네상스(renaissance). 이 단어는 프랑스어 동사 naître(태어나다)의 명사형인 naissance(탄생)에 접두어 re-(다시)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재탄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유럽의 중세 말기에 일어난 변동을 설명하는 데에 왜 재탄생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큼 역사를 잘 설명하는 단어도 없다. 유럽사는 르네상스 기를 기점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을 만큼 격변했기 때문이다.


  상업혁명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유럽은 당시에도 최고의 인구 대국이었던 중국은 물론 종교 문제로 인해 껄끄러운 상대였던 중동의 이슬람 문명과 비교해도 후진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역전의 실마리를 잡은 유럽은 200년 간의 수행 끝에 후진성에서 탈각하고, 다시 100년 뒤에는 동양 문명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활발하게 누비며 세상의 흐름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우뚝 섰다.


  '암흑기'를 헤매고 있었다는 유럽은 어떻게 해서 다시 태어나 일류 문명을 품게 되었을까? 아이 한 명이 태어나는 과정도 험난하기 그지없는데, 거대한 범위의 역사가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일까?





  십자군 전쟁은 200년 가까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다. 성지를 되찾겠다는 결의 하에 모였지만, 더 발달한 문물과 학문을 가진 이슬람 세계를 압도하는 것은 무리였다. 로마 교회의 권위를 되찾고 싶어 했던 교회와 더 넓은 영토의 확보를 원했던 기사, 그리고 환경 변화에 따른 특수를 노렸던 상인들의 동상이몽으로 인해 십자군의 조직력은 강하게 유지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해관계의 충돌은 같은 기독교권 국가인 비잔틴 제국이 십자군에게 공격을 받는 촌극까지 빚었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이번에는 동방의 최강국으로 떠오른 몽골 제국이 유럽까지 넘어왔다. 효과적인 편제와 압도적인 기동력, 파괴적인 활을 갖춘 몽골군은 통치자 오고타이 칸이 전쟁 도중 사망할 때까지 서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침입은 막강한 기마병의 물리적 공습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유라시아를 관통한 몽골군을 따라온 페스트는 유럽에 매서운 2차 타격을 가했다. 흑사병 앞에서 신실한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고, 인구의 약 30%가 불과 몇 년 만에 사라지는 대참극이 벌어졌다.


  전쟁과 역병으로 쓰러진 유럽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당대의 정신적 지주였던 교회였다. 수많은 신자들이 희생되고 신앙심이 흔들리는 시대적 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미션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르네상스는 예술적인 도약의 시대라는 이미지를 가장 먼저 연상시킨다. 신실한 믿음으로도 흑사병이 내미는 죽음의 마수를 물리칠 수 없어 사람들의 신앙심에 균열이 일어나자, 교회가 예술의 진흥을 꾀했기 때문이다. 동방과의 무역이 활성화하면서 교역항의 역할을 한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전쟁과 역병의 치명타를 이겨내고 가장 먼저 일어났고, 신흥 부유층으로 도약한 상인들이 교회의 타깃에 들어왔다. 두 세력은 정치적·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손을 잡았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화(<천지창조>라는 별칭을 가졌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바로 그 결실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로부터 영감을 얻은 미술가들이 경쟁적으로 창작 활동을 해 나가면서, 서로의 능력을 빠르게 향상한 것이 위대한 걸작들로 이어진 것이다. 장엄한 대성당과 그 안을 수놓는 아름다운 예술품들은 교회의 성스러움을 더욱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그러나 특정 인물들의 의도대로 세상만사가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교회가 바랐던 대로 예술가들의 손에서 종교적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림과 조각이 쏟아졌지만, 사람들의 정신에 행사하는 영향력을 복원하려는 근본적인 목적의 달성은 점점 요원해져 갔다.



  르네상스 시기의 위대한 예술가에게 결정적인 감명을 제공한 고대 그리스의 유산은,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무슬림들이 계승해 오고 있었다. 이슬람 세계는 옛 그리스의 학문 위에 상인들 특유의 발달한 수적 감각을 얹음으로써, 유럽에 비해 앞선 과학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비록 200년 가까이 십자군 원정에서 고전했지만, 그간 이슬람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선진 문물이 유입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의 유산도 그 속에 섞여 자연스레 이동할 기회를 얻었다.


  유산의 전파는 이탈리아의 상업가들과 교회의 교감을 통해 예술적 성과로도 이어졌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의 단서가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는 점이었다. 기독교가 세계관을 전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시대를 산 현인들이 가지고 있던, 자연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흑사병으로 인해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생겨났을 즈음에 자연과학의 원류가 유럽에서 싹을 틔움으로써,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와 갖가지 진리를 규명하는 권력이 교회에서 이탈하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단초가 마련되었다.


교회는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예술을 고취했으나
다른 곳에서는 신앙을 침식할 과학의 물결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종교와 예술이 만난 명작 <최후의 만찬>과 당대의 관념에 부딪히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생활양식과 사회 규범을 종교에 맡기고 있었지만, 만물이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할 권리는 신에서 과학에 이양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유럽 문명의 재탄생은 종교가 예술의 경지로 승화한 절정기이면서, 신앙심의 뿌리를 흔드는 과학의 태동기이기도 했던 셈이다.



  이슬람, 몽골과의 접촉은 고대의 유산과 다시 만난 유럽에서 피어오른 문명 발전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이슬람 세계의 발달한 수학, 화학이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전래되었고, 당대 기술 발전을 선도한 중국으로부터 나침반과 인쇄술, 화약이 흘러들어왔다.


  동방과의 접촉으로 일어난 변화는 서양 문명의 질서를 뒤흔들었다. 인쇄술의 활용으로 지식의 보급 가능성이 넓어짐에 따라, 지식을 독점하던 교회 및 엘리트 층의 특권이 크게 흔들렸다. 지식과 정보의 보유 차이가 뒷받침하는 위계의 기둥 중 하나에 균열이 간 것이다. 많은 것을 알게 되면 호기심과 의심이 비례해서 커지는 법이다. 인쇄술의 정착과 자연과학에 대한 탐구는 신앙심 유지의 가장 큰 두 적인 호기심과 의심을 자극함으로써, 교회의 권능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왕가 계승과 경제적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다툼을 벌이던 서유럽 국가들에 화약이 쥐어지자, 전술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개발한 화기는 개량을 거듭해 대포와 화승총으로 진화했다. 힘들게 쌓아 올린 성벽마저 무너뜨리는 대포의 위력은 성을 중심으로 공방을 펼치는 전투 양상을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이끌었다. 중거리에서 화살보다 파괴적인 총기의 등장으로, 기사와 궁수는 도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십자군 전쟁의 실패와 흑사병으로 인한 농민층의 희생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영주와 기사들은 총기로 인해 입지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인쇄술과 화약은 교회의 권위를 분산하고 기사의 권력을 해체하며
유럽 사회의 권력 구도를 재편성했다

  동방의 강자들과의 만남은 쓰디썼다. 신의 가호를 받는 기독교인들의 역량이 무슬림들의 무력과 중국의 기술력, 경제력에 뒤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유럽 문명에 성장통으로 작용했을 뿐이었다. 유럽인들은 그리스의 유산과 자신들의 자산, 그리고 나침반, 인쇄술, 화약을 융합하여 대항해 시대, 근대 과학, 총포를 창출했다.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문명의 무게추는 유라시아의 서편으로 넘어갔다.


  철벽의 요새인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의 수중에 떨어졌을 때까지만 해도, 유럽인들은 스스로의 힘이 부족함에 분개했다. 그러나 시련 끝에 르네상스 시기를 관통하며 중세에서 근대로 먼저 옷을 갈아입은 유럽은 다시 태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새로운 지도자, 과학을 등에 업고 총포로 무장하며 대양을 누비기 시작한 그들은, '암흑기'라 지칭한 1000년의 중세를 마감함과 동시에 자신들을 역사의 주역으로 격상한 근대의 문을 열어젖혔다.



(※ 인용문에 Mapo 꽃섬 서체를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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