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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고은 변호사 Mar 29. 2022

변호사가 말하는 성범죄 피해자가 수사 받을 때 유의할점

성범죄 피해자, 그들이 당당한 세상을 바라며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를 실천하여 힘을 기르기는 쉽지 않다. 무언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직접 배우고 익혀야 하는데 특히 전문적인 지식이라면 그 과정이 상당히 지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지식을 직접 배우는 대신 차선책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 한다.


성범죄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법률체계는 둘째 치더라도 법률용어 하나하나가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구성요건, 친고죄, 반의사불벌죄, 공소시효, 실체적 경합 등.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부담이다. 분명 피해자인데 어느 순간 가해자보다 더한 낙인이 찍혀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성범죄'를 검색해 본다. 결과는 실망스럽다. 검색 결과는 대부분 성범죄 '가해자'를 위한 정보다. 그게 아니라면 성범죄가 발생하였다는 자극적인 기사들만 넘쳐난다. 정작 피해자가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어디선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리가 무엇인지,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인지 검색하고 있을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고자 한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전달하고자 한다. 때로는 복잡한 법리로 때로는 사실적인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수사단계에서 피해자가 유의해야 할 점이다.


성범죄 수사 과정은 '①피해자의 피해 사실 신고 → ②수사기관의 피해자 조사 → ③수사기관의 가해자 조사 → ④신고내용의 사실 여부 확인 → ⑤수사 종결과 공소 제기 여부 결정' 순서로 이루어진다.


이번 편에서는 수사단계 중에서도 '피해자의 피해사실 신고, 수사기관의 피해자 조사'(①, ②)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피해 사실 신고와 피해자 조사


성범죄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 최근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개정되어 검찰에는 성범죄 사건을 접수할 수 없다.


경찰서나 파출소를 직접 찾아갈 수도 있지만 일단 112신고를 하는 것이 가장 편할 것이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수사팀이나 지구대에서 경찰관이 나오거나 경찰서에 출석하라고 안내한다.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만 13세 미만이거나 장애인 또는 범죄가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와 증거확보가 필요하면 해바라기센터로 간다. 센터에는 수사를 위한 경찰관은 물론 심리상담사와 의료진도 근무하고 있어 증거 확보와 피해자에게 필요한 상담이나 치료를 함께 진행한다.


그 외의 경우에는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서 피해 진술이 이루어진다.

피해자가 경찰 조사 단계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피해 진술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법원은 피해자의 피해 진술 이외의 다른 증거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❶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❷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그 자체로서 모순되지 않으며 ❸피해자가 가해자를 무고할 이유가 없는 경우라면 피해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판단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피해 진술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하고 있다.


이렇듯 피해자의 피해 진술은 성범죄 가해자 처벌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는 피해 진술을 하기에 앞서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피해자의 피해 진술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법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기 위해서는 피해 내용을 최대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억해 내야 한다. 피해 내용을 기억해 내는 것은 상당히 괴로운 일이지만 이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피해자는 여기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야 한다. 시간 순서대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정리하고 그 내용을 최대한 자세히 진술해야 한다.


한편 피해 내용을 과장하거나 없는 사실을 꾸며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진술 내용이 그 자체로 모순되고 가해자를 무고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서 한 진술 내용이 검찰과 법원에서 한 진술 내용과 세부적인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정도라면 법원은 그 진술 내용을 신뢰한다. 하지만 큰 틀에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법원은 피해자의 피해 진술을 믿기 어렵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증거까지 부족하다면 법원은 가해자에게 유죄 판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피해 진술과 버금가게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다. 수사를 통한 사실 확인은 경찰의 몫이지만 피해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피해자가 해당 사건에 대하여 제출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담당 경찰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냐'라고 따져 물어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게 되면 이는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그 내용을 통화녹음이나 문자내역 등으로 남겨 경찰에 제출한다면 향후 재판에서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음 칼럼에서는 수사단계에서의 피해자 권리와 수사의 종결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 칼럼이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심어주고, 나아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법적 권리를 통해 피해 회복을 하는 데 '힘'이 되길 바란다.



* 본 게시글은 필자가 2021. 3. 22. 로톡뉴스 칼럼에 게시한 칼럼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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