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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고은 변호사 Apr 11. 2022

성범죄 피해 대응의 첫걸음, 성폭력범죄 개념 이해하기①

성범죄 피해자, 그들이 당당한 세상을 바라며

부산의 한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A는 같은 과정에 있던 B에게 고백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A는 6개월에 걸쳐 B 몰래 B의 커피에 자신의 정액을 타서 B에게 마시게 하고, B의 칫솔과 컴퓨터 등 소지품에 자신의 정액이나 침을 묻혔다.


여러분이 검사나 판사라면 가해자를 어떤 범죄로 처벌받도록 할 것인가? 정확한 죄명까지 떠오르지는 않더라도 분명 가해자는 성범죄자로 처벌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A는 성범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검사는 A에 대해 성범죄가 아닌 재물손괴죄로 공소를 제기하였고, 법원도 재물손괴죄로만 처벌하였다. A의 행동은 B의 성적자유 또는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우리 법이 가져온 결론은 'A가 B의 커피나 소지품을 못 쓰게 만들었을 뿐(손괴)'이라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비단 이 사례뿐만이 아니다. 독서실에서 학업을 하던 여학생의 무릎 담요에 체액을 묻힌 독서실 실장도, 여성의 가방과 학습지에 정액을 뿌리고 도망간 자도 모두 성범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그런데, 위 가해자들의 행위를 성범죄로 처벌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필자는 성범죄 피해자가 취해야 할 다양한 대응 방안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그간의 칼럼을 요약하면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숨기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경찰, 여성가족부 등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기관과 그들이 이미 마련해놓은 다양한 제도를 당당히 이용하고 가해자가 자신의 죗값을 온당하게 치르도록 자신의 권리를 행사함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가해자의 행위가 어떠한 범죄에 해당하는지조차 모르면서,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는 것이 가능할까?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해결책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에 지금부터는 피해자들의 대응에 앞선 이야기, 즉 어떠한 범죄가 성범죄인지를 다루고자 한다. 자신이 당한 피해가 어떠한 범죄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이해하고, 가해자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피해자가 진정으로 치유 받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범죄는 강간죄, 유사강간죄, 강제추행죄 등의 성폭력범죄와 성매매 관련 범죄, 공연음란죄 등의 성풍속범죄로 나뉜다. 필자는 이 칼럼을 처음 연재할 때부터 성폭력범죄를 중심으로 설명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성폭력범죄는 성풍속범죄에 비해 피해의 정도가 심각하고, 최근 많은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칼럼에서는 성폭력범죄 중 간음, 유사간음, 추행의 죄를 중심으로 성범죄의 개념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은 성폭력범죄의 기본구조와 추행의 의미를 이해해 보자.




성폭력 범죄의 기본구조


'간음'은 남성과 여성의 성기가 결합하는 것을, '유사간음'은 구강성교나 항문성교와 같이 성기와 성기 외 신체 내부의 결합을, '추행'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피해자가 만 16세 미만(피해자가 만 13세 미만인 경우는 가해자의 나이 제한이 없고, 피해자가 만 13세 이상 만 16세 미만인 경우는 가해자가 만 19세 이상인 경우)인 경우 외에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간음, 유사간음, 추행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


성폭력 범죄에 있어 가해자가 저항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폭행하거나 거부할 수 없을 정도의 협박을 하는 것을 '강제',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 것을 가해자가 이용하는 것을 '준(準)', 강제에 이르지는 않지만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하는 것을 '위력', 무엇인가를 속이는 것을 '위계'라고 한다. 가해자가 강제, 준, 위계, 위력 중 하나의 수단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간음, 유사간음, 추행하면 성폭력 범죄로 처벌된다.


강제, 준, 위계, 위력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후 칼럼에서 살펴보겠다.



추행의 의미


간음이나 유사간음과 달리 추행의 정의는 상당히 추상적이다.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행위란 어떠한 행위일까?


법원은 성적인 의미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적 접촉이 있으면 추행으로 인정하고 있다. 가슴이나 엉덩이를 잡거나 만지는 등의 행위를 비롯하여,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의 어깨를 주무르며 자신도 안마를 해 달라고 한 경우, 회식 도중 결혼을 안 한 이유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등의 말을 하며 피해자의 머리를 자신의 겨드랑이에 끼운 경우 등도 추행으로 인정되었다. 즉,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에서 신체접촉이 이루어졌다면 그 신체 부위의 차이는 추행을 인정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한편 법원은 주로 신체적 접촉이 있는 경우 추행으로 인정하고, 신체적 접촉이 없는 경우를 추행으로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다. 가해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피해자에게 칼을 겨누어 협박한 후 자신이 자위하는 모습을 보게 하거나, 여자 화장실에서 피해자가 보는데 자위한 경우 등 피해자가 회피하기 어려운 제한된 공간이나 상황에서 가해자가 자신의 성기를 노출한 때에만 추행으로 인정한 예가 있을 뿐이다.


이제 A를 비롯한 가해자들이 왜 성폭력범죄로 처벌받지 않았는지 이해될 것이다. 가해자들의 행위는 간음이나 유사간음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다. 또한 앞서 말했듯, 법원은 신체적 접촉이 없는 경우 추행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하다. 이에 검사는 가해자들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들의 물건이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손괴죄로 공소를 제기하였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가해자들을 손괴죄로 처벌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성폭력범죄의 구조와 추행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글을 통해 성범죄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피해가 어떠한 범죄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이해하길 희망한다. 이후 칼럼에는 위에서 간단히 설명하였던 강제, 준, 위계 및 위력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자.




이 칼럼이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심어주고, 나아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법적 권리를 통해 피해 회복을 하는데 '힘'이 되길 바란다.



*본 게시글은 필자가 2021. 7. 21. 로톡뉴스 칼럼에 게시한 칼럼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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