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시에는 모자이크 하나도 없다

자신에게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by 홍선


하고 싶은 말일수록 하지 않는 성격의 사람들이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시간을 달이고 달여 한 방울로 만들어 내면 그것이 한 행이다.... 그래서 시집은 너무 뜨거워 맨손으로 냉큼 잡을 수가 없다. 70 피나 시체처럼 보기 힘든 것들에는 시청에 주의를 요한다고 경고하고 희미하게 보여주는데 시인들의 시에는 모자이크 하나도 없다...... 71 분명 자기가 쓴 시집에 사인을 해주겠다는 건데 사인 받는 사람의 표정으로 조심스레 수줍게, 나는 그날 집에 와서 자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72


책,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입이 간질간질, 그동안의 내 이야기를 모두 쏟아 내고 싶어졌다. 앞으로 집에 남은 벽들을 없애려면 또 얼마나 숫자를 거꾸로 세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천천히 없애 나가도 될 것 같다. 내게 가장 큰 벽으로 느껴졌던 엄마와 아빠, 그리고 친구를 되찾았으니까. 아무래도 내 기분이 돌 같은 날은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친구와 주변 사람들에게 미리 말해 줘야 할 것 같다. '날 안아 주세요.'라고. 90


책, 빨간 송곳니



비비안 마이어는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 시카고에서 보모로 일했다. 21세기 초반 존 말루프가 그의 필름을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 아무도 마이어가 15만 장에 달하는 사진 원판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평생 미혼으로 보모의 역할에 충실히 살았으나, 우리는 그를 '한 가정의 보모'가 아닌 '위대한 사진 예술가'로 기억한다. 카메라를 매개로 보모 마이어는 예술가 마이어가 되었다. 그는 남들이 그냥 지나쳤을 수많은 민들레꽃을 사진에 담았다. 41


책, 셔터는 정신이 누른다.


가독성이 가장 좋은 것은 코눙스보크로, 글자가 또렷해서 고대 단어들을 더듬더듬 읽어갈 수 있었다. "나는 어릴 적 홀로 떠났다가 길을 잃었다. 동행이 생기자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람은 사람에게 기쁨이니.".......사본 보관실 옆방에는 또 다른 보물이 있었다. 민속학자들이 1903년부터 1973년까지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채록한 테이프였다. 그곳에서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음반을 들을 수 있었다. 1903년 밀랍 실린더에 홈을 새긴 에디슨의 그라포폰으로 녹음한 자료였다. 음반에서는 나이 든 여자, 농부, 뱃사람이 자장가를 부르고 옛 가락을 읊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렇게 낯설고 아름다운 소리는 처음이었다. 이 고대의 목소리를 하루빨리 대중에게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2.,..... 나는 릴 녹음을 계기로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휴대용 VHS 비디오 카세트 레코더인 딕타폰을 이용하다가 새로 등장한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미래의 몫으로 남긴 채 모든 것을 수집하려고 애썼다. 나는 나만의 기록 보관소를 만들고 있었다. 안드리 마그나손 연구소를. 24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



비밀이란 것이 그렇듯이 완전하게 감추기는 어렵다. 비밀은 늘 조용히 퍼트려지며 그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와 열쇠를 남긴다. 하지만 열쇠는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었을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 타로는 비밀을 감추고 있는 그림들이다. 누구나 그 비밀에 가까이 갈 수 있고 누구나 비밀의 문을 열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열쇠를 쉽게 내어주지는 않는다. 성급하고 거칠게 문을 열고자 하는 사람은 문 앞에서 쫓겨날 거고, 거만하게 구는 자에게는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 열쇠를 내줄 것이다. 57


책, 장미의 열쇠, 타로의 신화학



잘라낸 가슴처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모발 센터의 여자는 말했다. 나는 그녀의 친절한 말에 어딘지 모르게 폭력적인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잘라낸 가슴처럼'이란 말이 사라진 유두의 자리를 때릴 것만 같았다. 62


책, 열다섯 번의 밤



스콧과 에반스는 다소 거친 오리지날로부터 한참 떨어진 입장에서 이 곡에 세련미를 더하고 있다. 빌이 고전음악을 통해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 음색에 한 겹의 윤기를 더해 준다. 도입부의 선율에는 따듯함이 묻어나며 반주부의 화성은 그 아래서도 더없이 밝다. 74 그는 D플랫 장조에서도 단조 스케일을 사용했고, 그것은 나중에 현악 파트가 사용한 전통적인 F장조 스케일보다 훨씬 색채감 있는 해결 방식이었다. 69 몇 해 뒤 그의 애인이었던 페리 커즌즈는 매일 반복되는 그의 연주곡목들을 지켜봤다. "보통 그는 고전음악을 연주했다. 물론 아시다시피 그는 낭만적이었기에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했고, 아울러 베토벤과 바흐도 연주했다. 그러고 나면 그는 마치 물 흐르듯 재즈로 옮겨 갔는데 그걸 듣는다는 것은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ㅡ 내가 누렸던 특권이라고나 할까." 재즈를 택하든 그렇지 않든, 에반스는 자신이 연주자라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후 5년 동안 자신의 레퍼토리를 쌓아 갔으며, 그 속에서 진로를 선택했다. 결국 재즈계에서 경력을 쌓아 나가거나 또는 스튜디오 안에서 녹음에 전념하는 일 모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65


책,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



"내게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당신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간신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라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하다는 것뿐이라오.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듯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경써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의심과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런 시절을 아이 없이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가 만들고 또 만들었던 파티 음식, 축하 케이크들. 손가락이 푹 잠길 만큼의 당의. 케이크에 세워두는 작은 신혼부부 인형들. 몇백, 아니, 지금까지 몇천에 달할 것들. 생일들. 그 많은 촛불들이 타오르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다.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냄새는 꽃향기보다 더 좋았다. "이 냄새를 맡아 보시오.".....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대화의 중요성입니다. 대화를 포기한 순간들이 많잖아요. 분명, 이해 불가한 시간이라고 또는 분명 무슨 말로 다시 설명해도 결국 오해 할 거라고. 어차피 호감이나 비호감이나 이미 내정한 설핏 논리로 가장한 감정들의 파도가 될 거라고. 그런데, 레이머드 카버의 단편소설에선 주가 대화입니다. 제가 대화를 간과한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대화를 대화답게 해야 할 문전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생각을 많이 해 본 듯......, 개인적인 배경과 이유는 압니다만, 그래도 레이먼드 카버는 저에게 말하는군요. 설핏 다가오는 계속 오는 감정을 들여다보고 대화도 하라고, 매몰되지 말고 서로 이야기를 나눠도 보라고 말입니다. 체호프의 단편까지 들여다보는 시간만큼 누구와의 대화들에 파도를 실어야 할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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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