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벤치

알베르트 아센시오 글, 그림 김정하 옮김

by 홍선



내 옆에 앉아 주었고

또 계속 내 옆에 앉아 있을 모두에게.



파란색 벤치예요.

원래부터 파란색은 아니었지요.

처음에는 나무색이었어요.

하지만 오래전에 파란색으로 색칠을 했어요.

하늘빛과 비슷한 그런 파란색으로요.

타보는 파란 벤치를 정성껏 돌보았어요.

해마다 벤치의 앞과 뒤, 옆까지 다시 색칠해 주었어요.

벤치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보며 좋아했지요.

타보는 벤치로 비둘기가 날아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비둘기들은 조용히 기다렸다가 날아와서 벤치를 더럽히니까요.

벤치가 더러워지면 아무도 앉지 않을 테고요.

하지만 타보는 언제나 다시 색칠해 주었고

벤치는 다시 반짝반짝 빛났어요.

타보는 어린이와 어른들, 강아지와 고양이들 모두가

벤치에 앉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동안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의 삶들이 벤치에 머물다 갔어요.

그들 중 아무도 언제부터 공원에 벤치가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지만요.

아마도 파란 벤치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자신에게 깃들어 있는지 기억할 거예요.

이 공원에서 처음 만난 클롯과 루나처럼요.

클롯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쾌활한 하얀 강아지였어요.

루나는 세상에 대해 관심이 많은 커다란 개였어요.

라우라와 카를로타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두 사람은 어느 날 서로 사랑한다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이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지요.

후안과 마리아는 모래성을 만들면서 친해졌어요.

이 둘은 매일 오후 공원에서 만났어요.

여러 밤이 지나고 여러 날이 지났어요.

둘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했어요.

둘은 일요일마다 파란 벤치에 앉았어요.

처음처럼 손을 꼭 잡고요.

그 무엇도 둘을 갈라놓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전쟁이 그 둘을 갈라놓았어요.

모든 전쟁이 다 그렇듯이 말도 안 되는 전쟁이었어요.

전쟁이 후안을 다른 공원으로 데려가 버렸어요.

영원히.

마리아는 이제 혼자였지만,

여전히 일요일마다 공원에 찾아왔어요.

파란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그러다가 모래밭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웃기 시작했어요.

후안과 마리아가 어렸을 때 놀던 바로 그 모래밭이었어요.

겨울이 가고,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또다시 가을이 되었어요.

어느 날 마리아는 좀 더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어요.

거기, 그 공원, 그 파란 벤치에서

또 다른 사랑이 시작되었거든요.


2009, 알베르트 아센시오 글 그림, 김정하 옮김, 파란벤치, 노란상상



'누구에게, 전해줘서 간직할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일 수 있는지, 누구였는지, 누구의 누구였는지 알아보아야 하니까, 사람은 사람이 거울로 자신의 모습은 물질로만 비추니까.'그래서, 새벽 교차 독서를 하다가, 그림책을 찾아 손 끝이 여기저기 머무르다 파란 벤치를 다시 열었다. 그래서 이야기만 죽 써 내려가본다. '이야기를 물고 기억하며 생각할 수 있음에 힘이 되지 않을까.'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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