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는 그냥 잡채고, 인생은 인생이야.
잡채 하면 찐득하게, 또 찐하게 색깔난 당면을 주요 포인트다.
적당히 달달하면서, 불지 않게 만들기 위해 기름에 잔뜩 볶아져서 코팅된 그 당면을 보고 있으면, 아주 기갈나게 배고파진다.
그런 잡채는 남아도 잡채밥과 잡채찌개와 다양한 음식에 활용이 된다.
그런데 원래 잡채의 본체는 당면이 아니다.
잡채는 '잡다한 채소를 채 썰어서 섞어 먹는 음식'이다.
그래서 본래 잡채를 보게 되면, 당면은 둘째 치고, 모든 재료가 거진 동량으로 섞여서 들어간다.
중식의 대표메뉴 중 하나인 고추잡채만 살펴봐도 쉽게 그 사실을 납득, 혹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쫄깃한 그 식감과 자극적으로 짤고 단 맛을 지배하는, 당면이 '주재료'처럼 자리를 잡아버렸다.
뭐 그 잡채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둔다고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잡채의 본질적인 모습이 망가졌다고 잡채를 부여잡고 지킬만한 사람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그러나 그렇게 보니 한 가지 떠오른 것이 있다.
인생의 본체를 당면이라고 생각하는 이 사회.
인생의 본체를 어느 순간부터
자극적이고
달달하고
짭조름하고
쫄깃하고
가장 잘 드러나게 표현하는
'직업'
을 본체라고 생각하는 이 사회
그렇게 된 것 같다.
처음엔 맛있어서 다른 재료와 같이 동량을 넣었던 이 직업 (돈을 버는 구석) 이 / 이제는 모든 것을 제치고, 이것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이 사회를 딱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유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오그라들기도 하고,
조금은 억지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당근같이 알록달록한 취미도, 버섯 같은 푹신푹신한 여유로움도, 양파처럼 안정적인 가정도, 고기와 같이 재미난 친구들도 조금씩 뒤로한 채, 당면만 우걱우걱 먹는.
그래서 간장과 설탕과 쫄깃한 맛은 있지만, 결국 탄수화물만 먹었다는 것을 자각하듯.
직업에 몰두한 우리는 뒤돌아봤을 때 결국 '직업' 뿐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듯.
(말로는 아니라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직업이라는 것에 투자하게끔 만드는 사회와 교육과 어른들의 말들...)
잡채와 같이 살아가자.
조금은 뒤범벅된 체로.
어느 하루, 그것이 오늘이더라도
당면의 맛이 좀 덜 났다면, 직업에서 하루가 별로였어도
다른 채소들로 그 맛을 보완하며,
친구와 가족과 휴식과 취미로 오늘 하루를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