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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훈느 Oct 01. 2021

1호점과 2호점 사이는 기차로 4시간

더티커피 맛집 'Metal hands'의 베이징1호점과 상해 2호점

 상하이의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 는 큰길 모서리에 붙어있는 대형 쇼핑몰과 아주 오래된 밥집, 작은 공간을 힙하게 꾸며놓은 요즘 소품샵과 카페가 한데 모여 옹기종기 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주말 아침이면 집 앞 공원에서 달리기를 마치고, 개운하게 씻은 뒤 파란색 공유 자전거 헬로바이크 (哈喽单车) 를 타고 그 일대의 예뻐 보이는 카페를 도장깨기 하듯 방문하는게 내 루틴일 정도로 규칙적으로 새로운 카페를 찾아 다녔다. 커피는 늘 아메리카노나 드립으로 '블랙 커피' 를 고수하는 나이지만 방문한 카페에 '압도적으로 유명한 시그니처 메뉴'가 있으면 꼭 대표 메뉴를 골라 마셔보는 걸 원칙으로 했는데 그래서인지 주말 오전에 마시는 커피는 특히 기대가 되었다. 사무실에서 습관적으로 들이키는 텀블러 속 드립 커피나 출근길에 사 온 종이컵 속 아메리카노 대신 다른 공간에서 커피잔에 담긴 '남이 만들어준 커피' 를 마시는 게 마치 긴긴 다이어트 중 맞이한 치팅 데이 같은 느낌이었달까?


 '메탈 핸즈(metal hands)' 는 그렇게 충실히 루틴을 수행하던 어느 날 오전에 발견해 가게 된 곳이다. 전부터 온라인에서 눈여겨 보던 집이었는데 그냥 골목길에서 우연히 간판을 발견해 홀린 듯 들어갔다. 좁다란 샛길의 좁은 공간을 활용해 만든 카페 내부는 어두운 우드와 브론즈가 인테리어 메인 테마인지 클래식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오래 된 호텔 로비 카페의 벽 뒤 공간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상상이 될지 모르겠다. 

대충 쓴 것 같지만 느낌있는 입간판

드립 커피와 더티 커피가 시그니처 라는데 늦여름 날씨에 자전거를 몰며 목덜미며 콧잔등에 끈끈하게 땀이 나 뜨거운 드립 커피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미지근한 온도의 더티 커피를 마시는게 좀 더 나을 것 같다 판단, 대표 메뉴인 더티 커피를 주문했다. 정장 바지에 셔츠, 정장 조끼를 걸친, 바리스타가라기 보다는 테일러에 더 까워 보이는 외모의 주인은 들릴 듯 말듯 아주 조용조용한 말투로 주문확인 후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커피가 나오기 전 내어준 물 한잔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뒤늦게 공간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과 브론즈, 어두운 우드는 카운터와 테이블에만 한정되어 있고, 창문과 천장은 두터운 통유리로 되어 있으며, 벽은 회갈색이 나는 벽돌로 촘촘히 쌓아져 있다. 조명은 노란 빛이 강한 조명, 부들과 억새를 키만큼 높게 꽂아놓은 대형 화병 같은 디테일을 보다 보니 땀도 식고 마음이 편해져 그제서야 주중에 마저 읽지 못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중국에 오기 전 혹시 너무 심심할까봐, 현지에서 YES24 결제가 잘 안될까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을까봐, 여러 노파심에 이북 리더기인 크레마를 구매하고 한번에 책을 50권쯤 담아왔는데 결과적으로 잘 한 일이었다. 눈이 아플까봐 큰 기계를 사는게 나을까 아니면 휴대성이 좋은 작은 기계를 사는게 나을까 고민하다가 LINE 과 콜라보 한 귀여운 곰돌이 외관에 반해 가장 작은 사이즈의 크레마 미니 사이즈를 구매했는데 그 역시 잘한 일이었다. 미니백에도 쏙 들어가는 사이즈에 무게도 거의 나가지 않아 나는 큰 부담 없이 언제나 작은 가방에 50권의 책과 선글라스를 던져 넣고 카페에서, 빵집에서, 공원에서 또는 여행지나 출장지에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셨다. 

카페에 갈 때 꼭 챙기는 이북 리더기와 선글라스

주문한 더티커피가 나왔는데 내가 상상한것과 조금 다른 외관이다. 우유 거품과 크림이 찻잔 바닥까지 흘러 넘쳐 입술을 더럽히며 먹는, 그런 화려한 커피를 상상했는데 잔도 자그마하고 무엇보다 모양새가 놀랄만큼 소박하다. 더티 커피 라기보다는 플랫 화이트 같은 모양에 '인증샷은 못찍겠네' 하는 실망스러움보다는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상해 바닥에서 이걸로 유명해졌지?' 하는 호기심이 앞선다. 한모금 마시려 자그마한 유리잔을 기울이니 차가운 우유 거품과 뜨거운 샷이 천천히 뒤섞이며 입안으로 넘어온다. 역시 플랫 화이트와 약간 비슷한 맛이다. 그런데 그보다는 약간 더 녹진하고 묵직한 질감이다. 물(드립)과 간장(플랫화이트)과 올리브유(더티) 정도의 차이. 쌉쌀하며 매끄러운 감촉, 부드럽고 무게감 있는 감촉이 섞이며 마지막엔 가벼운 단맛을 남긴다. 짧게 몇번 입맛을 다시며 마시고 나니 맛의 인상이 좀 더 분명해진다. 샷이 내 기준에 좀 더 진했으면 싶지만 상해에서 주문했던 대부분의 블랙 커피는 한국 대비 엷은 맛을 냈기에 이정도가 사람들의 기준이지 싶다. 그래도 그 중에서는 비교적 존재감이 있는 커피 맛이었다. 휴대폰으로 좀 더 이 집에 대해 검색해보니 신기한 내용이 하나 나온다. '메탈핸즈는 2016년부터 영업중인 카페로 1호점이자 본점은 베이징에 위치해있다. 2호점은 상하이에 있다.' 그 넓은 중국에 지점이 딱 2개인 체인형 개인 카페가 있고, 1호점과 2호점이 다른 도시에 있다니. 갑자기 가본 적 없는 베이징에 있는 본점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놀랍게도 그로부터 약 1년 뒤, 베이징에 갈 일이 생겼다. 반은 놀러, 반은 베이징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주로 기차로 2시간 미만의 도시만 다녔던 나에게 베이징은 처음으로 떠나는 비교적 먼 여행지였다. 파견 가기 전에는 중국 근무하면서 긴 휴일마다 가보고싶던 도시에 다 가봐야지 마음이 들떴었는데 파견 중 맞이한 COVID-19로 외국인이 이동하기 애매한 시기가 길어져 비행기로 2시간, 기차로는 4시간 거리인 베이징은 정말 오래간만에 맘먹고 장거리를 뛰어 가게 된 도시였다. 비행기, 기차, 비행기, 기차 가격과 시간을 따지며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기차를 타고 갔는데 베이징 공항은 유독 연착이 잦고 공항과 도심 거리가 멀어 기차가 훨씬 낫다고, 잘 한거라고 친구들이 말했다. 

베이징에서도 애용한 공유자전거

뭔가를 먹으면서도 먹을 것을 찾을 만큼 진성 먹보인 나는 베이징 행 기차 속에서 친구와 이미 가기로 예약해둔 베이징덕 지점을 지도에 표시하고, 베이징 식 양고기 훠궈는 어디서 먹어야 괜찮은지, 줄을 엄청 선다는 군만두집은 어디인지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외에도 엣 골목길인 후통(胡同)에 꼭꼭 숨겨져 있다는 스피크 이지 바, 숙소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京A' 라는 꽤 유명한 맥주집, 케이크가 맛있어 보이는 카페 몇군데, 마지막으로 꼭 가보고싶던 메탈 핸즈 본점 위치를 하나씩 지도에 스크랩 해 두었다. 유적지를 가려고 한 것 도 아니고, 대부분의 박물관이나 관광지가 COVID-19로 제한된 인원만 사전 예약을 받아 들어갔기에 베이징에서도 상하이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니백에 이북 리더기와 선글라스, 손소독제와 여분 마스크만 챙긴 단촐한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온갖 골목을 쏘다니며 먹고 마시고 사진찍고, 자전거를 타고 또 다음 먹을거리를 찾아 이동하며 휴가 일정을 진성 먹보답게 알차게 보냈다.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오기로 한 마지막 날 아침, 그간의 먹부림을 잠깐이나마 만회하고자 러닝머신에서 1시간 달리기, 수영장에서 1시간 수영을 야무지게 마쳤다. 베이징에서 유명하다는, 유리 병에 담긴 요거트를 떠먹으며 호텔 조식 부페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천안문까지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 돌고 오니 체크아웃 & 기차역으로 이동할 시간이 훌쩍 다가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짐을 챙기고 커피 한잔 하고 이동하면 딱 맞을 시간, 메탈 핸즈 본점은 호텔에서 자전거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마침 시간도 딱 카페 오픈할 시간이라 나는 옛 애인이라도 만나는 것 같은 마음으로 로비에 짐을 맡긴 뒤 자전거 페달을 밝았다. 

좀 더 자유로운 동선의 메탈핸즈 베이징 본점

골목을 돌고 돌아 도착한 메탈 핸즈 본점은 커다란 건물 1층에 위치한, 상하이 2호점 보다 좀 더 여유로운 공간의 커피숍이었다. 희뿌연 햇빛이 내리쬐는 실내에 오픈 후 제일 첫 손님으로 도착해 카운터를 찾아 두리번 거리니 마른 체구의 직원이 나서서 뭘 마시겠냐고 물었다. 상하이에 살고 있고, 베이징엔 여행왔는데 여기가 메탈핸즈 본점이라 일부러 찾아왔다고, 양쪽 더티 커피 맛이 각각 어떤지 궁금하다고 하니 안경 쓴 직원의 눈이 동그래지며 반긴다. 확실히 두 지점 맛 차이가 있다고, 베이징 점이 좀 더 진하고 강렬한 맛이 날거라며 한번 느껴보라고 맞장구 치던 직원은 앉아 기다리라며 물 한잔을 우선 내온다. 구불구불한 동선으로 구성된 본점은 커피 머신 위에 말려놓느라 올려둔 커피잔도, 원두 자루도 심지어 매장 안에서 일하는 직원수도 상해점 대비 훨씬 많아 좀 더 활기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손님은 나 하나 뿐이었지만 가게 안쪽까지 촘촘하게 배열된 테이블과 의자를 보니 얼마나 많은 손님이 오가는지 알만했다. 천장에 설치된 구불구불한 파이프 레일과 노란색 알조명, 태양빛을 연상시키는 벽면의 빗살 무늬 문양, 채도 높은 터키색 커피 머신과 기둥에 붙어 있는 메탈 장식들이 공간에 경쾌함과 생동감을 주는 느낌이었다. 사진을 몇장 찍다 보니 "맛있게 드세요 (请慢用)" 하는 짤막한 말과 함께 상하이에서 봤던 것과 꼭 같은 자그마한 사이즈의 유리잔에 더티 커피가 담겨 나온다. 

베이징점의 더티커피.

겉보기엔 희뿌연 우유층과 커피 층이 희미한 경계와 함께 두 층으로 담겨 나온게 상하이에서 마신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잔을 잡는 위치에 따라 뜨뜻하기도, 시원하기도 한 온도감도 비슷한 느낌이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 자리를 뜨지 않고 나를 쳐다보는 직원의 눈길에 약간 쑥스러워하며 첫 모금을 들이켰다. 부드러운 달콤한 맛 보다는 확실히 좀 더 거칠고 산미와 가벼운 흙냄새를 포함한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상하이점의 더티커피가 유들유들한 초식남 같다면 베이징점의 더티커피는 달리기를 마치고 호쾌하게 땀을 닦는 느낌이랄까. 정말 상하이점 보다 좀 더 짙고 풍성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하니 그제서야 직원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웃으며 자리를 뜬다. 벼르던 메탈핸즈 본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상하이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문득 궁금해진다. 전국에 딱 2개의 체인을 가진 개인 카페가 몇개나 있을까? 그 2개의 체인이 중국 전역에 2군데 그것도 상하이와 베이징이라는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 있다니, 두세블럭마다 하나씩 있는 스타벅스와 비교해보니 더욱 신기하다. 1호점에서 2호점으로 가려면 기차를 타고 4시간 이동하십시오. 하는 상상을 하다보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쿡쿡 웃음이 나온다. 다음주 주말엔 메탈 핸즈 2호점에 다시 방문해 좀 더 생생한 비교를 해볼까? 아니면 전에 봐둔 다른 동네 카페에 가볼까 휴대폰을 뒤적여본다. 도착 시간은 아직 한참이고, 새로운 카페 후기는 그새 또 수두룩하게 늘어 있다. 분주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중에도 고속철은 굉음을 내며 낯선 도시와 도시 사이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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